“조혈모세포 기증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가장 감사하고 쉬운 길이였습니다.”
지난 3월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는 60대 남성에게 조혈모세포를 기증한 이남호(30)씨의 고백이다. 제주에 사는 그를 지난 27일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을 통해 만났다.
조혈모세포는 골수에서 만들어져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으로 분화하는 ‘혈액의 어머니 세포’로 정상인의 혈액 중 약 0.1%를 차지한다. 백혈병이나 혈액암 환자에게 조혈모세포 이식은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필수 치료다.
“교회 형 지갑에 빼곡히 들어 있던 헌혈증이 멋져 보였어요.” 이씨는 헌혈이 가능한 나이인 고1 때부터 13년간 135번이나 헌혈한 이유를 설명하며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듯 웃었다. 이어 “그런데도 정작 조혈모세포 기증엔 관심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2022년 매형이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는 과정을 보면서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깨달았어요. ‘단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으로 같은 해 기증자로 등록했습니다.”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 등록은 만 18세 이상 40세 미만의 건강한 사람이면 누구나 가능하다. 이씨는 “등록 절차는 간단했다”며 “가까운 헌혈의 집을 방문해 설명을 듣고 5㎖ 정도의 혈액만 채혈하면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등록했다고 모두가 기증에 이르는 건 아니다. 부모와 자식 간 조직 적합 확률은 5% 이하, 형제자매 간에도 약 25% 수준이다. 타인의 경우는 수천, 수만명 중 한 명꼴로만 일치한다.
이 희박한 확률을 뚫고 이씨는 기증 등록 2년 만인 지난해 10월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으로부터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는 60대 남성과 조직적합항원(HLA)이 100% 일치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막상 연락이 오니 조금 두려웠어요. 하지만 예전처럼 골반에서 채취하는 게 아니라 일반 헌혈과 비슷한 방식이며, 부작용도 거의 없다는 설명을 듣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이씨는 가족들에게 기증 의사를 전하고 중보 기도를 부탁했다. 그런데 혹시 모를 부작용과 건강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는 “‘유전자 일치 확률이 얼마나 희박한지, 매형 때를 생각하면 환자 가족들이 얼마나 절박한지 아시지 않느냐’고 어머니를 설득했다”며 “기증하지 않으면 평생 죄책감이 남을 것 같아 계속 얘기한 끝에 어머니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곧장 교회로 달려가 예배를 드리며 펑펑 울었다. “조혈모세포를 이식받는 환자는 기증자가 의사를 밝히는 순간부터 이식 준비에 들어가는데, 만약 기증을 취소하면 그 환자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해요. 그걸 생각하니 기증할 수 있게 돼 더욱 감사했습니다.”
그는 “결국 우리 곁을 떠난 매형이 떠올랐고, 생명을 나누는 감사와 이식을 받게 될 환자의 회복을 바라는 마음까지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면서 “하나님께 이 모든 과정을 인도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고백했다.
이씨는 제주에서 4~5일간 촉진제를 투여하고 채집 전날인 3월 19일 서울로 올라와 2박3일간 병원에 입원했다. 채집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목 부위 중심정맥관을 통해 혈액을 뽑고, 자동 성분채집기로 조혈모세포만 걸러 수혈백에 모은 뒤 나머지 혈액은 다시 체내로 되돌려보내는 방식이었다.
그는 “약 240㎖의 조혈모세포를 얻기 위해 4시간 동안 누워 있어야 했지만, 중심정맥관 삽입 시 약간의 통증만 있었을 뿐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퇴원 후 일상생활도 문제없었고 조혈모세포는 2~3주 내 회복된다. 주 2회 해오던 헌혈을 6개월간 못 하는 것만 제외하면 괜찮다”고 덧붙였다.
이씨가 SNS에 올린 조혈모세포 기증 이야기는 큰 반향을 얻었다. 그는 이를 계기로 기증 인식 확산을 위해 할 일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조혈모세포 기증은 타인을 위한 일이자 결국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기증 문화를 알리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로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