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권으로 구성된 신약성경은 예수의 삶을 증언하는 사복음서(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와 사도 바울 등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 보낸 서신서로 흔히 나뉜다. 이 모호하고도 거친 분류 기준은 ‘사복음서는 동일한 내용을 반복’하며 ‘13편의 바울 서신은 엇비슷한 내용이 담겼을 것’이란 오해를 낳았다.
전 서울장로회신학교 신약학 교수로 20여년간 교편을 잡아 온 저자는 “신약성경 27권 중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는 책은 단 한 권도 없다”며 이를 정면 반박한다. 사복음서가 한 사람 예수를 얘기하는 건 맞으나 “각각의 복음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내용은 다르다”는 것이다. 바울 서신 역시 저자가 바울로 고지된 점 외엔 공통분모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각양각색의 내용을 다룬다. 저자가 신약성경을 ‘각기 다른 상황에서 하나님 뜻을 따른 이들의 각기 다른 신앙 고백이 담긴 책’으로 정의하는 이유다.
책 초입에서 저자는 신약성경 각 권이 고유의 빛깔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공들여 설명한다. 신약성경이 지닌 다양성은 현대인의 다양한 삶과 신앙고백을 긍정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 안에서 ‘너’를 인정하며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저자의 말이다. “성경을 읽다 보면 (여기에) 많은 사람의 상황과 각 상황에 따른 고백이 담겨 있는 사실이 고마워진다. 내 입에 풍성한 고백의 가능성을 놓아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고백들을 따라가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믿음을 드러낼 수 있다.”
신약성경 내 다채로운 신앙고백이 하나로 묶일 수 있는 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 안에 있다”는 특유의 세계관 덕분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며, 그 역사 속에 개입한다”는 관점이다. 이를 ‘묵시 문학적 역사 인식’으로 설명하는 그는 “하나님이 결국엔 악한 세상을 멸하고 그분의 궁극적 승리를 역사에 드러낼 것이란 믿음이 신약성경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말한다. 이 인식에 힘입은 초기 기독교인은 박해 가운데서도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을 지키려 노력했다. 그 결과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세계의 질서를 개편하는 역동적인 존재로 부상했다.
저자는 복음을 ‘믿음 소망 사랑’(고전 13:13)으로 풀어내며 이 인식 틀로 신약성경을 읽어 각자의 상황에 적용할 것을 주문한다. 성경 속 인물의 삶에서 예수가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해석해내지 못하면 자신에게 말씀하는 하나님 역시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성도는 대체로 성경 해석을 자신이 아닌 목사나 다른 권위자에게 의존한다”고 지적하는 그는 “성경 해석부터 이미 다른 사람의 눈을 빌린다면 수많은 눈으로 인해 믿음의 근거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신약성경의 올바른 독해와 해석을 위해 각 성경의 서문을 통해 이야기의 구조와 문맥의 흐름을 들여다볼 것도 제안한다. 여타 작가들처럼 신약성경 저자들도 서문에 글을 쓰는 목적과 주제를 밝히며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마태복음에선 예수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임을 밝히는 족보 이야기(마 1:1~17)가 서문이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다민족의 조상’(창 17:5)을, 다윗의 자손은 ‘유대인의 메시아’를 상징한다. 이는 마태복음의 핵심 메시지가 “진정한 메시아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위한 왕”이란 걸 시사한다.
마가복음은 서문(막 1:1~3:6)부터 예수의 죽음을 암시한다. 첫 문장에 ‘복음의 시작’이란 표현이 등장하는 마가복음은 세례 요한의 이야기에 예수의 세례 이야기를 잇댄다. 요한처럼 예수의 길도 죽음으로 향한다는 걸 드러내는 장치다. 서문(요 1:1~18)에서 ‘말씀이 곧 하나님’임을 밝힌 요한복음은 본론에서 신학적 논증이 중점적으로 다뤄질 것을 예고한다.
전공자가 아닌 일반 대중의 성경 독서와 내적 성숙을 돕는 신약성경 개론서다. 평이한 언어와 정갈한 표현으로 신학적 개념을 어렵지 않게 설명하는 저자의 내공과 필력이 돋보인다. 그럼에도 “이 책은 성경을 해석하는 ‘수많은 눈 중 하나’일뿐 정답은 아니”라는 그의 정직하고도 겸손한 고백은 내용의 신뢰감을 더한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