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발생한 경북 의성과 경남 산청·하동의 ‘괴물 산불’이 진화된 지 한 달이 됐다. 경북 북부지역을 초토화한 산불은 당초 예상의 2배가 넘는 9만9000여㏊의 피해를 냈다. 화마가 휩쓸고 간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고 있다.
피해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생활이 막막하다. 초대형 참사에 이들 지역에서 예정됐던 봄맞이 축제와 행사가 대부분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찾는 발걸음도 당연히 줄어들었다. 지역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나타나는 ‘2차 피해’도 적지 않다. 해당 지역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큰 어려움에 부닥쳤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장사 안된다고 하소연도 못할 처지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본격적인 여행철을 맞았지만 산불 피해를 본 지역에는 손님이 줄고, 숙박업소는 예약이 취소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산불로 각종 축제가 취소되고 연기된 탓이야 어쩔 수 없지만 산불에 따른 관광지 훼손 등의 선입견으로 아예 찾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지난 3~4월 안동 관광택시 예약 70여건, 3~5월 안동 시티투어 예약 280건이 취소되고, 한옥스테이 등 숙박업소 예약도 90% 이상 취소됐다. 간고등어, 안동찜닭 등 안동 대표 음식점 매출도 산불 이전 대비 50% 이상 감소해 소상공인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피해지역 주민의 아픔에 동참하는 온정이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들의 아픔을 모두 달래기에는 부족하다. 피해지역 경제를 도울 대규모 관광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희망관광 기획전 등을 여는 등 각 지방자치단체의 노력도 잇따르고 있다. 산불로 큰 피해를 본 안동시가 ‘착한 관광, 안동으로 여행 기부’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산불 피해로 고통받는 지역으로 놀러 가는 것이 ‘민폐’라고 여기는 관광객들에게 ‘오히려 여행 오는 것이 돕는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피해 지역민들을 배려해 오지 않는 것보다 산불 피해 지역으로 여행을 오는 것이 복구를 돕는 ‘기부’이자 ‘선한 영향력’이라는 것이다.
청송군과 영양군, 영덕군도 다를 바 없다. 청송군은 화재 피해를 본 주왕산국립공원을 개방해 등산객을 맞이하고, 청송 출신 2만5000명에게 ‘고향을 찾아 달라’고 읍소하고 있다. 영덕군은 전 국민이 함께 산불 재난을 극복하자는 취지의 지역 홍보 마케팅인 ‘어게인 투 영덕’ 사업을 진행하고 6월에는 여행객과 함께 ‘반려묘목 심기 블루로드 코스 트레킹’을 준비하고 있다. 영양군은 산불로 폐쇄됐던 자작나무숲을 개방하고 9일부터 3일 동안 산불 피해 극복을 위한 산나물 먹거리 행사를 연다. 원래 예정됐던 ‘영양산나물축제’ 대신 산불 피해를 다 같이 극복하자는 의미를 담은 공감과 치유 중심의 행사로 진행된다. 산불 때문에 벚꽃축제를 취소한 하동군은 2~5일 ‘하동야생차문화축제’를 여는 한편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최대 15만원 숙박비와 식비를 지원하는 여행 인센티브도 도입했다. 산청군은 1~11일 차황면 법평리 황매산미리내파크 일원에서 ‘황매산철쭉축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축제 방문객을 대상으로 ‘반값 여행’도 마련한다.
5월 초 황금연휴가 이어진다. 해외여행을 떠나려는 여행객이 많다고 한다. 한 여행사에 따르면 해외여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가까이 늘었다. 긴 연휴에 여행사의 특수 기대감은 크지만 내수 진작 효과는 부정적이다. 산불 피해 지역민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의 관심과 실천이다. 이번 연휴에 해외로 나가는 대신 산불 피해지역의 관광지를 찾아보는 게 더 큰 보람을 안겨줄 수 있다. 피해주민에게는 삶의 의욕을 북돋아 줄 수 있고 지역경제 회복에 도움을 줄 수도 있어서다. 따뜻한 응원과 동행이 될 ‘착한 여행’을 하는 것은 어떨까.
남호철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