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나무랄 수 없지만 최근 은행 실적을 보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1분기 경제성장률은 -0.2%이고 지난해 2분기부터 보면 4개 분기 연속 0.1% 이하 성장률을 기록했다. 국가의 소비, 투자, 수출입 등이 줄어 생산과 소득이 감소했다는 의미인데, 나라 전체의 부가가치 생산이 줄어드는 이 와중에도 4대 금융지주 실적은 발표 때마다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엄청난 실적의 비결은 이자 이익 극대화에 있다. 4대 금융지주의 1분기 이자 이익은 10조6000억원으로 삼성전자 영업이익 6조6000억원의 1.6배다. 지난해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삼성전자와 비교하며 은행이 충분히 혁신적인지 질문한 적이 있는데 그 문제의식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은행은 혁신 대신 예금 금리와 대출 금리의 차이를 이용해 돈을 벌고 있다. 예금 금리는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를 명분으로 빨리 내리면서 대출 금리는 당국의 대출 관리 요구를 이유로 천천히 내리는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경제가 쪼그라드는 상황에서 은행만 막대한 돈을 버는 일이 계속되면 지난달 출간된 책의 제목처럼 ‘부자 은행 가난한 사회’가 된다. 은행만 부유해지고 다른 경제 주체들은 가난해진다는 것인데, 이는 경제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은행은 경제 활동의 주체라기보다 금융 중개의 역할을 하는 존재다. 중개인이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면 경제 주체들은 활동의 이유와 의욕을 잃게 된다.
더욱이 지금 은행이 돈을 버는 방식은 ‘국민경제의 저축과 투자를 증대시키는’ 본연의 역할과 거리가 멀다. 계속 증가하는 가계대출 규모에서 알 수 있듯 은행 수익의 상당 부분은 주택담보대출과 같은 비생산적인 분야에서 나온다. 주담대를 통해 빌려준 돈은 경제 활동의 효용을 늘리기보다 개인의 자산 증식이 목적인 부동산으로 들어간다. 요즘 대학에서 쓰이는 경제학개론 교재는 은행의 역할을 ‘자금이 건전하고 수익성 높은 곳에 흐르도록 유도하는 존재’로 설명한다. “은행은 자금 수요자의 수익성과 안전성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안목과 정보를 갖고 있어 조성된 자금이 한층 더 건전하고 수익성 높은 곳으로 투자되도록 유도할 수 있다.”(‘경제학 들어가기’ 496쪽) 지금 한국의 은행들이 이렇게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부자 은행 가난한 사회’를 쓴 임수강 박사는 부동산 담보 대출 증가에 따라 은행의 이윤율이 높게 나타나는 현상을 사회의 위험 신호라고까지 이야기한다. 돈이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곳으로 흐르지 않아 경제의 발전 잠재력이 줄어들고 금융위기 가능성은 커지며 불평등 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물론 은행에 모든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 부동산 대출이라는 영업 환경은 은행이 혼자 만든 것이 아니다. 여러 정권의 정책 실패와 특정 지역에 쏠린 거주 수요, 표심을 위한 정책 금융 등이 어우러져 은행이 이윤을 내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 은행이 처한 현실도 복합적이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상장사로서 주주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면 실적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연임이 가능한 금융지주 회장을 정점으로 하는 거버넌스는 단기 실적을 도외시할 수 없게 한다.
그럼에도 저성장 시대 홀로 고도성장을 거듭하면 여론의 차가운 시선과 정치적 압박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는 장기적으로 은행에도 부담이고 불리한 일이 될 것이다. 점차 외부로부터의 개혁 요구가 높아질 텐데 그 전에 은행 스스로 혁신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자금이 생산적인 분야로 더 흐르게 하는 데 고민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권기석 경제부장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