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된 가정으로 회복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까. 에덴동산에서 살았던 처음 사람 아담을 보면서 길을 찾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복된 가정을 위해 평생 반드시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 의역하면 ‘자기야’라는 프러포즈일 것입니다. 프러포즈는 결혼 전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딱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닙니다. 가정을 이룬 다음에도, 쉼 없이 죽을 때까지 유지해야 합니다. 프러포즈는 둘이 하나임을 고백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가정을 이룬 후에도 배우자를 ‘당신’이라는 의미를 지닌 ‘자기야’가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의미를 갖는 ‘자기야’라는 호칭을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서로를 향한 처음 사랑을 고백한 프러포즈였기 때문입니다. 한 가정을 거룩하게 지켜나가겠다는 결단의 의미도 담겨 있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복된 가정을 위해 평생 입 밖에 꺼내서는 절대 안 되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창 3:12) 의역하면 ‘저 여자’ 혹은 ‘저 남자’란 말입니다. 자기야라고 했던 아담은 ‘그 여자’라고 합니다. 이는 스스로 자신을 둘로 나누어버린 생명 파괴입니다.
처음 사람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복된 가정을 위해 평생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을 탓하고 여인을 정죄합니다. 자기에게서 분리돼 심판자의 자리까지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더 무서운 사실은 정작 자신은 그렇게 큰 잘못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자보다 더 의롭다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었으면 평생 ‘네 탓’은 하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이는 곧 선악을 내가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선악을 판단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복된 가정을 위해 평생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처음 사람 아담의 프러포즈를 보십시오. 그가 한쪽 무릎을 꿇고 반지를 끼워주며 프러포즈를 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말을 했는지는 압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그는 여자를 ‘너’라고 하지 않고, ‘우리’라고 하지도 않았으며 의역하면 ‘자기(나)’라고 부릅니다. 둘이란 개념이 애초에 없었던 것입니다.
가정을 이루기 전 이런 마음을 계속 지켰더라면 좋았을 텐데 가정을 이룬 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난 다음 그는 변합니다. 복된 가정의 회복을 기도한다면 ‘자기야’를 날마다 순간마다 부르도록 합시다. ‘당신은 나야’ ‘자기는 나야’를 매일 말하면서 서로 하나임을 되새기면서 가정을 지켜나갑시다.
인간은 둘로 나뉘면 죽습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아담을 보면 처음엔 스스로 하나 되었음을 노래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를 둘로 나눠 버립니다. 이는 자기 자신을 둘로 쪼개는 행위입니다. 아담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래도 계속 ‘여자 너 때문에’ ‘남자 너 때문에’ 하면서 나누고 분리하는 일을 하겠습니까. ‘우리는 곧 죽어도 하나다’ 이렇게 살아갑시다.
평생 네 탓, 하나님 탓하지 말고 자기야란 프러포즈는 해야 할 것입니다. 나를 살리고 배우자를 살리며 가정을 살려내는 생명의 프러포즈입니다. 한 입으로 하나의 말만 하고 한 몸으로 하나의 일만 하면서 삽시다.
김종호 빛들의교회 목사
◇김종호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 목회자이며 빛들의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