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총선서 ‘반트럼프 민심’ 올라탄 집권 자유당 승리

입력 2025-04-29 18:52 수정 2025-04-30 00:07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29일(현지시간) 수도 오타와에서 열린 자유당 총선 승리 축하 행사에 참석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캐나다 집권 자유당이 28일(현지시간) 실시된 조기 총선에서 승리했다. 자유당은 올해 초까지 정권심판론을 내세운 제1야당 보수당에 크게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판세는 넉 달 사이에 완전히 뒤집혔다. 이를 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 진보 세력을 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캐나다를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51번째 주’ 조롱과 관세 폭격이 표심을 자유당으로 결집하게 했다는 것이다.

캐나다 CBC방송 등에 따르면 29일 오전 거의 모든 개표가 완료된 가운데 하원 전체 343석 중 자유당은 168곳에서 당선이 확정됐거나 유력한 상황이다. 반면 보수당은 144곳에서 당선이 확정됐거나 선두를 달리고 있다. 보수당 대표인 피에르 포일리에브르는 의석을 잃었다.

자유당이 전체 의석의 과반(172석)을 확보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다만 과반에 미달하더라도 집권하는 데 문제는 없다. 캐나다 총리직은 상징적 국가수반인 총독이 관례적으로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의 대표를 임명해 왔다. 쥐스탱 트뤼도 전 총리 시절에도 자유당은 진보 성향 야당과의 협약을 통해 정권을 유지했다.

자유당의 선거 승리는 불과 몇 달 전과 비교하면 극적인 반전이다. 트뤼도가 이끌던 자유당은 2015년부터 이어진 장기 집권 피로감에다 고물가와 이민 정책 실패까지 더해지며 총선 참패가 예상됐었다. 지난해 말 자유당과 보수당의 지지율 격차는 25% 포인트에 달했고, 자유당 의석이 40석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이런 상황을 변화시킨 건 트럼프였다. 그는 지난해 11월 당선 후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고 수차례 말했다. 또 올해 1월 취임 직후엔 캐나다에 대한 관세 부과에 나섰다.

캐나다 국민들은 트럼프를 실존적 위협으로 받아들였고, 트럼프의 슬로건과 유사한 ‘캐나다 우선주의’를 내걸었던 보수당은 지지율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인기 없는 트뤼도가 퇴진하고 캐나다와 영국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마크 카니가 새 당대표 및 총리로 나서자 정권심판론도 희석됐다. 여론조사업체 앵거스리드의 사치 컬은 “보수당에 대한 거부감, 트럼프의 관세, 트뤼도 퇴진이 결합해 자유당으로 지지자들이 결집했다”고 분석했다.

카니 총리는 총선 승리를 확정 지은 뒤 승리 연설에서 “트럼프와 미국이 캐나다를 무너뜨리려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통합이 심화돼 왔던 캐나다와 미국의 관계는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와) 두 개의 주권적이고 독립적인 국가의 미래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며 “우리는 이 무역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