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미술 교사의 삶은 보험사에 다니는 친구의 요청으로 자동차 도감을 처음 그리면서 180도 달라졌다. 자신이 그린 자동차 부품을 보면서 “내가 한 번 부품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라는 사고의 전환이 오늘의 삼보모터스를 탄생하게 했다. 당시의 미술 교사는 창업주인 이재하 삼보모터스 회장이다. 2027년이면 창립 50돌을 맞는 삼보모터스는 그동안 자동차 부품 제조업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한국 자동차 산업 발전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 회장의 첫째 딸 이유경 삼보모터스 관리총괄 사장은 최근 국민일보와 만나 “그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사고의 전환에서 비롯된 창업 정신 덕분에 지금껏 지속해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서대구역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삼보모터스 대구 세천공장. 사무동 현관에 들어서니 한쪽에 ‘글로벌 종합 상황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초대형 화면을 통해 부품을 실은 트럭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물류 트래킹 시스템을 비롯, 국내외 생산 공장의 생산 설비를 실시간으로 한눈에 살필 수 있었다. 그룹사인 프라코 체코 범퍼 조립 공정에서 부품을 장착하느라 분주한 현지 직원 모습이 화면에 떴다. 박영현 삼보모터스 재무본부장은 “정보기술(IT) 사업 부문에서 전담 개발한 시스템”이라며 “경영진과 주요 임원은 스마트폰에서도 자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모니터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광판에 공장 가동률이 90~100%로 적힌 것을 보니 일감이 가득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삼보모터스 세천공장은 궁극적으로는 인공지능(AI)을 결합한 스마트팩토리를 지향한다. 공장 입구에는 녹색(정상)·노랑(경고)·파랑(계획 정지)·빨강(결함) 등 색상에 따라 공정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스크린을 설치해뒀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지난 2020년 12월부터 100% 자동화를 시범적으로 운영 중인 스팩 모델 라인이다. 이곳에서는 로봇 팔 3대가 50초에 한 개씩 냉각수 파이프를 뽑아내고 있었다. 삼보모터스의 주요 고객은 현대자동차그룹(점유율 85%)인데, 이 제품은 글로벌 완성차 소형 모델 납품용이었다. 권대호 삼보모터스 생산2팀 선임은 “자동화 설비는 인건비 절감은 물론 휴먼에러(인간오류)를 방지해 품질 향상에 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스테인리스 소재 공급부터 구부리고 뚫고 자르고 모양을 빚어 확관해 적재하기까지 모든 공정을 로봇이 해냈고 사람의 손길은 닿지 않았다. 권 선임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향후 전 공장에 확대 적용을 계획하고 있다”면서 “다만 투자비가 많이 들어 대규모 자본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동차에 주유하려면 삼보모터스가 생산해 완성차에 탑재한 파이프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주유구를 열고 주유기를 꽂을 때마다 눈으로 보는 파이프 대부분을 삼보모터스가 만든다고 보면 된다. 이 사장은 “변속기 쪽에 들어가는 플레이트류, 연료 이송 역할을 하는 연료 파이프, 냉각수와 뜨거운 공기를 배출하는 워터 히터 파이프 등을 주력으로 양산한다”며 “자동차를 구동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액체와 기체를 안전하게 배달하는 관을 우리가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파이프 확관 공정 앞에 별표와 함께 ‘특별특성 공정’이라고 큼지막이 쓰여 있는 이유도 인화성 물질을 다루는 부품의 특성상 화재 위험성을 제로 수준으로 낮춰야 하는 고난도의 기술력과 주의를 필요로 하는 공정이기 때문이다. 현대차 아반떼에 들어가는 필러넥 파이프를 용접하는 라인은 반자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이 부품을 용접기 틀에 맞춰 넣고 문을 닫으면 기계가 알아서 납땜하는 식이다. 물탱크에 부품을 담가 거품 발생 여부를 확인하는 ‘수몰 리크 테스트’는 파이프 안의 기름 유출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마지막 중요 공정이었다. 이 사장은 “삼보모터스는 현대차·기아가 인증하는 ‘품질·기술 5스타’를 모두 보유 중”이라며 “1차 협력사 중 두 개 인증을 동시에 가진 곳은 많지 않다”고 강조했다.
“친환경·자율주행, 미래 성장동력 주목… 매출 3조 목표 향해 정진”
이유경 관리총괄 사장
차에 국한 않고 R&D 전 산업 확대
UAM용 전기수직이착륙기 선보여
이유경 관리총괄 사장
차에 국한 않고 R&D 전 산업 확대
UAM용 전기수직이착륙기 선보여
삼보모터스는 창업주 이재하 삼보모터스 회장에서 2세 경영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다. 장녀 이유경(사진) 삼보모터스 관리총괄 사장은 2010년 회사에 입사해 전략기획실장·구매본부장·경영본부장을 거쳐 2022년부터 사장을 맡고 있다. 자동차 부품 제조 업계에 흔치 않은 여성 최고경영자(CEO)로 사는 삶은 성별에 따른 선입견과 리더십에 대한 도전을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최근 삼보모터스 대구 세천공장에서 만난 이 사장은 작업복을 입고 나와 삼보모터스의 현재보다는 밝을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다.
이 사장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주목하는 분야는 친환경이다. 그는 "앞으로 펼쳐질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두 축은 친환경과 자율주행"이라면서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 제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으며 전장 기술을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 관련 부품 등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삼보모터스는 내연기관 부품을 넘어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수소전기차 등 친환경 차량 구동과 동력 전달 관련 아이템을 단품에서 모듈화로 확대하는 단계까지 성장했다.
이미 삼보모터스는 단순 자동차 부품 제조사를 넘어섰다. 이 사장은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모빌리티 회사가 되겠다는 의지가 강해 회장님부터 연구·개발(R&D) 인력을 미래 자산으로 여긴다"며 "R&D 범위를 자동차에 국한하지 않고 철도·선박·항공 등 전 산업에 걸쳐 적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삼보모터스는 완성차 1차 협력사 가운데서도 드물게 선행연구소와 양산연구소를 모두 갖고 있다. 선행연구 담당만 60명 이상이며 그룹 전체로 R&D 인력이 200명가량이다.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분야에서는 벌써 이정표를 남겼다. 올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에 처음으로 참가해 하이브리드 UAM용 전기수직이착륙기(e-VTOL) 'HAM Ⅲ-2'와 무인 소형 e-VTOL 'HAM Ⅱ-X'를 선보였다. 이 사장은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의 기술을 모두 접목한 집약체"라며 "설계부터 완제품 제작까지 필요한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상징성이 크다"고 말했다. HAM Ⅲ-2는 수소연료전지와 전기 배터리를 함께 사용해 구동하는 하이브리드 e-VTOL다. 크기는 날개 길이 9m, 무게 850㎏으로 성인 2명이 탑승할 수 있다. 이 사장은 "연료전지 핵심 부품인 스택에 들어가는 금속분리판의 개발을 완료하고 양산 직전 단계에 있다"며 "향후 UAM 배터리에 수소연료전지를 채택하면 응용처가 넓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삼보모터스 실적은 완만한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별도 기준 매출액은 2022년 3486억원에서 2023년 4138억원에 이어 지난해 4423억원으로 매년 증가했다. 당기순이익도 지난해 100억원을 돌파했다. 그룹 전체 매출액은 같은 기간 1조7414억원, 2조1545억원, 2조2482억원으로 성장세가 뚜렷하다. 이 사장은 "매출 3조원의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대구=김혜원 기자 ki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