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날 경찰 간부 “국회 가면 누구 체포하겠나… 티 안나게 사복 입어”

입력 2025-04-29 18:56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내란 중요 임무 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지호 경찰청장이 1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상계엄 당일 일선 경찰서 형사과장이 체포 대상을 묻자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간부가 “국회 가면 누굴 체포하겠냐”고 답하는 내용의 통화 녹음이 법정에서 재생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지귀연)는 29일 조지호 경찰청장 등 경찰 지휘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사건의 5차 공판을 열었다. 검찰은 공판에서 지난해 12월 3일 밤 박창균 전 영등포서 형사과장과 이현일 전 국수본 수사기획계장 간 통화 녹음을 재생했다.

이 전 계장은 박 전 과장에게 “방첩사(국군방첩사령부)에서 국회 체포조 보낼 거야. 인솔하고 같이 움직여야 할 형사 5명이 필요하다”며 형사 명단을 요구했다. 이어 “경찰 티 나지 않게 사복 입어. 형사 조끼 입지 말고”라고 했다. 박 전 과장이 “뭘 체포하는 거냐”고 묻자, 이 전 계장은 “국회 가면 누구를 체포하겠냐”고 되물었고 박 전 과장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이어 이 전 계장은 “일이 커. 넌 또 왜 이럴 때 영등포(서)에 있니. 빨리 명단 줘”라고 했다.

그다음 날 오전 추가 통화에서 박 전 과장은 “저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려고 했냐. 이상한 걸 시키려고 했으면서”라고 말했다. 이 전 계장은 “이상한 거 시키려 한 게 아니라 현장에서 지원을 해 달라고 해서 그런 것”이라고 답했다. 검찰은 국수본이 방첩사의 국회의원 체포 목적을 인지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증인신문에서 검찰이 “나락에 떨어진다고 생각한 이유”를 묻자 박 전 과장은 “밤새 뉴스를 보니 부당하고 위법적인 일들이 시도된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박 전 과장은 “국회로 가서 누구를 체포한다고 생각했느냐”는 질문에는 “시민이 많이 몰려드는 상황에서 질서유지, 어쨌든 계엄 상황에 집단 폭동을 대비한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또 이 전 계장 말에 한숨을 쉰 데 대해 “(소수) 인원으로 체포 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상황이 너무 힘들 거라 생각해 한숨을 쉬었다”고 말했다. 검찰이 “국회의원 체포하라고 할 거라 해서 한숨 쉰 건 아니냐”고 묻자 “정보를 들은 게 없고 유추하거나 예측할 상황은 아니었다”고 답했다.

양한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