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당일 일선 경찰서 형사과장이 체포 대상을 묻자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간부가 “국회 가면 누굴 체포하겠냐”고 답하는 내용의 통화 녹음이 법정에서 재생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지귀연)는 29일 조지호 경찰청장 등 경찰 지휘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사건의 5차 공판을 열었다. 검찰은 공판에서 지난해 12월 3일 밤 박창균 전 영등포서 형사과장과 이현일 전 국수본 수사기획계장 간 통화 녹음을 재생했다.
이 전 계장은 박 전 과장에게 “방첩사(국군방첩사령부)에서 국회 체포조 보낼 거야. 인솔하고 같이 움직여야 할 형사 5명이 필요하다”며 형사 명단을 요구했다. 이어 “경찰 티 나지 않게 사복 입어. 형사 조끼 입지 말고”라고 했다. 박 전 과장이 “뭘 체포하는 거냐”고 묻자, 이 전 계장은 “국회 가면 누구를 체포하겠냐”고 되물었고 박 전 과장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이어 이 전 계장은 “일이 커. 넌 또 왜 이럴 때 영등포(서)에 있니. 빨리 명단 줘”라고 했다.
그다음 날 오전 추가 통화에서 박 전 과장은 “저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려고 했냐. 이상한 걸 시키려고 했으면서”라고 말했다. 이 전 계장은 “이상한 거 시키려 한 게 아니라 현장에서 지원을 해 달라고 해서 그런 것”이라고 답했다. 검찰은 국수본이 방첩사의 국회의원 체포 목적을 인지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증인신문에서 검찰이 “나락에 떨어진다고 생각한 이유”를 묻자 박 전 과장은 “밤새 뉴스를 보니 부당하고 위법적인 일들이 시도된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박 전 과장은 “국회로 가서 누구를 체포한다고 생각했느냐”는 질문에는 “시민이 많이 몰려드는 상황에서 질서유지, 어쨌든 계엄 상황에 집단 폭동을 대비한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또 이 전 계장 말에 한숨을 쉰 데 대해 “(소수) 인원으로 체포 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상황이 너무 힘들 거라 생각해 한숨을 쉬었다”고 말했다. 검찰이 “국회의원 체포하라고 할 거라 해서 한숨 쉰 건 아니냐”고 묻자 “정보를 들은 게 없고 유추하거나 예측할 상황은 아니었다”고 답했다.
양한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