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4대째 장로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교회는 당연한 일상이었다. 찬양을 좋아했던 나는 자연스럽게 음악 교육을 전공했고 내 진로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졸업 후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반복된 취업 실패는 자존감을 무너뜨렸다. ‘하나님은 왜 이런 시간을 주시는 걸까’라는 원망과 혼란 속에 놓였다.
그러던 중 교회 청년부와 함께 말레이시아 단기선교를 떠나게 됐다. 영어가 서툴렀던 나는 의료선교팀에 직접 참여할 수 없었고 대신 정글에 들어가 종일 나무 베는 일을 맡았다. ‘노래도 잘 못 하고, 영어도 못 하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몸으로 부딪히는 일밖에 없구나’ 하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선교지 한복판에서조차 ‘왜 이렇게 쓸모없는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힘들었다. 고된 하루를 마친 후 저녁 예배 때 선교사님의 설교 본문이 스바냐 3장 17절이었다. 그 말씀이 내 마음 깊은 곳에 불쑥 들어왔다. 사람들은 내가 가진 능력과 재능 유무로 나를 평가했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셨다. 내가 무엇을 하는가와 상관없이 내가 하나님의 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뻐하신다는 말씀 앞에 나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 말씀은 존재 가치를 새롭게 정의해 주었고 흐려졌던 내 삶의 방향을 분명히 세웠다.
그날 이후 삶의 기준이 바뀌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남편을 만나 구세군 사관의 길을 걷게 됐다. 구세군 사관은 화려하거나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자리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영혼을 구원하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는 자리임이 분명하기에 기쁨으로 감당하고 있다.
지금은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에서 사역하고 있다. 이곳은 단순히 신학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아니다. 하나님나라를 위해 자신을 드리겠다고 헌신한 사관 학생과 함께 그들의 삶과 소명을 준비하는 거룩한 공동체다. 바쁘고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학생들의 눈물과 갈등, 열정과 기도를 함께 나눈다. 그러면서 나는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는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신다’는 말씀을 묵상하게 된다.
학생들의 성장과 변화, 사관으로 부름 받기까지의 여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내게 주어진 큰 특권이자 동시에 깊은 책임이다.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듯 나 또한 여전히 그 하나님의 기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다. 사관으로서도, 아내로서도, 엄마로서도 실수하고 넘어질 때가 많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이 말씀을 되뇐다.
<약력> △목원대 음악교육과 △구세군사관학교 미동군국(뉴욕) △이화여대 신학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