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댓글엔 정답이 없다

입력 2025-04-30 00:32

“첫 소개팅인데 오마카세 갔어야죠.” “차 열쇠 테이블에 올려두세요. 재산의 척도입니다.” SNL 코리아가 최근 ‘커뮤 밖은 위험해?’라는 제목으로 내보낸 방송의 한 장면이다. 연애에 서툰 사람에게 엉터리 조언을 해대는 인터넷 커뮤니티 누리꾼들을 풍자했다. “주문할 때부터 더치페이라는 걸 명확히 하라”는 모태솔로남의 ‘아님 말고’식 조언을 따르던 남자는 결국 평소 자신을 흠모하던 여자에게 퇴짜를 맞는다. 과장됐지만 현실감이 있어 웃음이 터진다. 많은 이들이 커뮤니티와 SNS에 떠도는 익명의 조언을 정답처럼 받아들이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커뮤니티와 SNS에 깊이 의존한다. 예전에는 연애 고민을 가족이나 친구에게 털어놨다면 이제는 ‘썸녀 톡 안 읽음’이라며 커뮤니티 검색창에 입력한다. 그러면 수십 개의 댓글이 쏟아지는데 그중 마음에 쏙 드는 하나를 골라 맹신한다. 조언을 누가 했는지, 어떤 근거가 있는지 알 수 없는데도 댓글의 ‘썰’은 이미 정답으로 둔갑한다. 인터넷에는 정보가 넘친다. 하지만 신뢰할 만한 정보를 가려내는 감각은 오히려 퇴화 중이다.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의 64%는 “인터넷과 SNS에서 접한 정보가 사실인지 확신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한국에서도 커뮤니티와 유튜브를 통한 뉴스 소비가 늘면서 가짜정보를 사실로 믿었던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70%를 넘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현실이 이런데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같은 방식으로 정보를 소비하고 있으니 걱정스럽다.

문제는 커뮤니티와 SNS에 범람하는 댓글 속 조언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방식까지 바꿔놓고 있다는 점이다. “톡은 일부러 3시간 뒤에 보내야 한다”, “관심 있으면 밀당해야 한다”는 식의 엉터리 조언에 빠지니 관계는 더 꼬인다. 사회성이란 본래 사람을 만나고 어울리며 체득하는 감각이다. 댓글 맹신은 그 과정을 건너뛰게 만든다. 그러고는 “요즘은 다 그렇게 한다”고 믿는 식이다. 어느새 커뮤니티와 SNS가 사회생활 교과서가 됐다.

인간관계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태도는 더 큰 혼란을 부추긴다. 선거나 백신, 환경, 젠더 이슈 등 민감한 주제마다 커뮤니티에 가짜뉴스가 퍼지고 이로 인해 정치·사회적 갈등이 심화한다. ‘좋아요’가 많이 붙었다는 이유로, 혹은 조회수나 댓글이 많다는 이유로 거짓 정보가 사실처럼 포장돼 사람들을 현혹한다. MIT 연구진은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실은 논문에서 SNS 가짜뉴스가 기존 언론보다 6배 이상 빠르게 퍼진다고 밝혔다. 이제는 AI 생성 콘텐츠까지 폭증하고 있으니 허위정보를 판별하기란 더더욱 어려워졌다. 이렇게 가짜뉴스가 횡행하는데도 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상황은 결국 현실의 정책과 법, 여론까지 위협한다. 실제로 우리는 최근 가짜뉴스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지 않았는가.

SNS나 커뮤니티 자체가 문제라는 건 아니다. 진짜 문제는 별 의심 없이 댓글을 맹신하는 태도다. 진짜 사람과 만나고 부딪치며 체득하는 사회적 감각이야말로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인데 요즘 우리는 그 과정을 외면하고 있다. 출처 불명의 댓글이나 글이 전문가 조언처럼 소비되고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다수가 말했다는 이유로 더 신뢰하거나, 좋아요 숫자가 많으니 정답일 것이라는 오해는 위험하다. 영화 ‘콘클라베’에서도 “의심하지 않은 확신이 가장 위험하다”는 명대사가 나오지 않는가. 거짓 정보를 분별없이 받아들이는 순간 내가 가짜뉴스의 숙주가 될지도 모른다. 누구나 자신을 속이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러니 더욱 경계해야 한다. 댓글엔 정답이 없다.

김상기 콘텐츠랩플랫폼 전략팀 선임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