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아트’ 눈독 해외 메이저 화랑들 ‘한국 작가 모시기’

입력 2025-04-30 00:08
우리는 전시장에서 자주 작품을 감상하고, 때로는 아티스트 토크를 통해 작가를 만나기도 한다. 그런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작가 뒤에는 보이지 않는 주역들이 있다. 화가, 조각가의 작품을 구입하고 후원하는 수요자인 컬렉터, 전도유망한 신진 혹은 저평가된 원로 등 작가를 발굴해 전시를 여는 중개자인 갤러리스트가 그들이다. 국민일보는 전시 리뷰, 작가 인터뷰 등 생산자 위주 관점에서 미술계를 소개하는 관성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에 미술계를 구성하는 컬렉터, 화랑 등 무대 뒤 주체들을 중심으로 끌어냄으로써 독자들이 잘 몰랐던 미술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하우저앤워스 갤러리 전속 이불 작가

올해 3월 한국 미술계에 빅뉴스가 날아들었다.

유학 경험이 없는 ‘국내파’임에도 세계를 무대로 뛰는 현대미술가 이불(61)이 세계적 갤러리인 하우저앤워스와 전속 계약을 맺은 것이다. 세계 5대 메이저인 이른바 ‘메가 갤러리’인 하우저앤워스가 한국 작가를 전속으로 받아들인 건 이불이 처음이었다. 1990년대 X세대의 간판스타인 이불은 30대 초반이었던 1997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썩어가는 물고기를 스팽글로 장식한 ‘장엄한 광채’(Majestic Splendor)를 전시하면서 주목받았다. 이후 베니스비엔날레 본 전시, 한국관 전시 등에 참여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현대 미술가로 자리매김했다. 이불은 기존의 전속인 타데우스 로팍, 리만 머핀과의 전속 관계도 정리했다. 스포츠로 치면 체급을 올려 이적한 셈이다. 미술계 순위는 지점 수, 직원 수 등을 따진다. 통상 페이스, 가고시안, 하우저앤워스, 데이비드즈워너, 화이트큐브가 1∼5위로 꼽힌다. 이어 타데우스 로팍, 리손 갤러리 순서로 언급이 된다.


해외 갤러리 진출, 한국 작가 ‘전속’ 이어져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 전속 이강소 작가

지난해 9월에는 개념미술 작가인 원로 작가 이강소(82)가 타데우스 로팍과 전속 계약을 맺었다. 타데우스 로팍은 2021년 10월 서울 한남동에 지점을 열며 한국에 상륙한 유럽의 메가 갤러리이다. 1970년대 회화도 조각도 아닌 ‘실험 미술’을 했던 이강소는 1975년 파리비엔날레에 참여하며 일찌감치 국제무대에 진출했다. 오리 그림이 인기를 얻으며 ‘오리 작가’로 대중에게 알려졌지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023년 ‘실험미술 1960-70년대’전에 소개되며 전위성이 부각됐다.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의 로팍 대표는 “이강소 작가는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철학과 미학을 기반으로 고유의 직관적인 작업방식을 구축해왔다. 1970년대 초기의 획기적인 퍼포먼스부터 현재의 작업까지, 그는 회화와 조각의 형식을 끊임없이 탐구하며 새로운 시각 어법을 확립해왔다”고 전속 이유를 밝혔다. 타데우스 로팍은 올해 6월 서울 지점에서 이강소 개인전을 한다. 타데우스 로팍은 앞서 2023년 한국계 캐나다 작가 제이디 차(42), 한국의 청년 작가 정희민(38)과 전속 계약을 맺었다.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 전속 정희민 작가

타데우스 로팍의 사례가 보여주듯 해외 갤러리가 한국 작가를 전속으로 품는 행보는 국내 진출한 외국 갤러리에서 두드러진다. 외국 갤러리의 국내 상륙은 2016∼2017년부터 본격화했다. 2016년 페로탕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서울지점을 내며 신호탄을 쏘았다. 이어 2017년에 리만 머핀과 페이스가 진출해 현재 둘다 이태원에 자리잡고 있다. 이후 2021년 타데우스 로팍에 이어 2023년 화이트큐브가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인근에 둥지를 틀었다.

페이스갤러리 전속 유영국 작가

한국 진출은 당연히 한국 작가를 눈여겨보는 계기를 제공했다. 미국 가고시안을 제치고 세계 정상에 오른 페이스갤러리는 기존에 한국 작가로는 이우환(89)을 전속으로 두고 있었다. 이우환은 한국의 생존 작가로는 유일하게 작품 가격이 30억원을 넘어서는 등 작품값이 가장 비싼 작가로 통한다. 페이스는 여세를 몰아 2022년에 원로 작가 이건용(83), 2023년에 작고 작가 유영국(1916∼2002)을 전속으로 추가했다. 이건용 역시 국립현대미술관 ‘실험미술 1960-70년대’전에 소개된 개념미술 작가이며, 유영국은 일제강점기 일본에 유학하며 한국 추상을 연 추상화 1세대 작가이다. 리만머핀은 기존에 전속을 했던 서세옥(1929∼2020), 서도호(63) 부자에 이어 2023년 실험미술 대가 성능경(81), 조각가 김윤신(90) 등 한국의 간판급 원로 작가를 전속 작가로 영입했다. 성능경 역시 국립현대미술관 ‘실험미술 1960-70년대’전에 초대된 원로이다.

페이스갤러리 전속 이건용 작가

미술사 중요 작가 영입… 이점은?

화이트큐브, 페로탕 전속 박서보 작가

외국 갤러리의 국내 작가 전속 행보에는 몇 가지 공식이 눈에 띈다. 우선 60년대 생으로 세계를 무대로 뛴다는 공통점이 있는 작가로 서도호, 이불이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 2012년 이후 국제무대에서 한국 미술을 대표하며 미술시장 블루칩으로 떠올랐던 단색화 작가군으로 이우환, 박서보를 들 수 있다. 세 번째 단색화 이후 미술시장 블루칩 바통을 이어가는 실험미술 작가군으로 이건용에 이어 성능경, 이강소 등이 차례차례 경쟁 외국 갤러리에 영입됐다. 리만 머핀이 영입한 김윤신 조각가는 독특한 입지를 갖고 있다. 그는 어느 그룹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1988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이후 40년 가까이 한국 미술계에서 잊힌 작가가 됐다. 하지만 2023년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관 개인전을 통해 혜성처럼 재등장했고, 그 전시를 통해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 아드리아노 페드로사의 눈에 띄어 본전시에 초청받았다. 리만 머핀 갤러리는 성능경, 김윤신 두 원로에 대해 “작업과 활동 기간에 비해 저평가된 작가”라고 평했다.

리만 머핀 전속 성능경 작가

문화적 배경으로는 영국 프리즈 아트페어의 국내 상륙이 가장 큰 요인으로 분석이 된다. 프리즈 아트페어는 한국화랑협회와 협력해 5년 계약을 맺어 2022년부터 매년 가을 서울 코엑스에서 아트페어를 열고 있다. 프리즈 아트페어 기간에는 개인 컬렉터뿐 아니라 해외의 주요 미술관 관장들과 유명 큐레이터, 작가 등 미술계 인사들이 대거 한국을 찾아 현장을 둘러본다. 이는 한국 작가들의 해외 전시 및 작품 소장 가능성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리만 머핀 전속 김윤신 조각가

한 갤러리 관계자는 “국제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전혀 뒤지지 않는, 너무 좋은 한국 작가들이 많다. 그동안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었다”며 “프리즈 아트페어의 서울 상륙 덕분에 홍콩이 가진 아시아 허브 지위를 ‘탈취’ 했고, 마침내 접점이 생기면서 한국 작가의 우수성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작가들이 더 많이 해외에 노출될 수 있도록 영문 도록 작업 등이 활발해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렇다면 외국 갤러리 전속이 됐을 때 한국 갤러리 전속과 비견해 어떤 이점이 있을까. 아무래도 외국 갤러리는 글로벌 시장에서 여러 지점이 있다 보니 해외 시장에 노출·홍보될 기회가 잦아지게 된다. 이건용 작가와 관계를 맺은 페이스 갤러리만 해도 2018년 페이스 베이징 전시와 2019년 서울 개인전을 통해 국제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소개했고, 2022년 전속 계약을 맺은 이후에는 홍콩, 뉴욕, 제네바 지점에서 활발하게 전시를 열어주고 있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