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가뭄 위기땐… 광폭 ‘雨클릭’

입력 2025-04-30 00:01 수정 2025-04-30 00:01

지난달 14일 경북에서 발생한 산불은 10만㏊를 태운 뒤 2주 만에 진화됐다. 전국 소방력이 모두 경북에 투입돼 산불을 저지했지만 비가 내리지 않는 고온·건조한 날씨가 지속되며 진화에 난항을 겪었다. 이 같은 대형 재난 상황이 반복되며 국지 지역의 기상을 조작하는 기술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여러 국가에서 기상 조작 기술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기술적 한계와 외교적 갈등이 난제로 남으며 상용화까지 긴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29일 과학계에 따르면 현재 가장 현실에 가까운 기상 조작 기법은 인공강우다. 인공강우는 말 그대로 자연적으로는 비가 내리지 않는 지역에 인위적으로 비구름을 생성해 비가 내리게 하는 기술이다. 국립기상과학원 설명을 보면 인공강우는 특수목적용 ‘기상 항공기’가 구름 속에 인공강우용 화학 물질(구름 씨앗)을 뿌려 빗방울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사용한다. 요오드화은 등 물질이 구름 속 수분과 결합해 무게를 얻고 지상으로 떨어지는 방식이다.

인공강우는 비가 필요하지만 지역 특성상 강우량이 적은 지역에서 수요가 높다. 현재 국제 사회에서 인공강우를 가장 공격적으로 활용하는 나라는 중국과 아랍에미리트(UAE)다. 중국은 베이징 등 북부 지역에 비를 내리게 하려고 인공강우를 사용한다. 급속한 공업 개발로 인한 극심한 대기 오염을 해결하는 방식 중 하나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같은 큰 국제 행사를 앞두고 이 기술을 이용해 비가 내리는 시점을 조작하기도 했다. 두바이·아부다비 등 자연적으로 강우량이 적어 가뭄에 시달리는 지역에서도 인공강우가 단비 역할을 하고 있다. 산불 같은 초대형 재해가 발생했을 때도 인공강우가 도움이 된다. 지난해 6월 중국은 산시성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을 진압하기 위해 인공강우를 활용했다. 소방관 2200명과 물탱크 88대를 동원해서도 잡지 못했던 불길이었지만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빗방울 덕분에 완전 진압에 성공했다.

인공강우 기술력은 수요에 비례하는 모습을 보인다. 중국과 UAE 외에도 미국·인도·러시아·호주 등이 인공강우 기술을 보유했지만 기술 격차가 크다. 중국은 국가 단위로 운영 중인 기후 조작 프로그램을 통해 올해까지 국토 절반 수준인 550만㎢를 인공강우 영향권 하에 두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이 2008년부터 10여년간 이 분야에 쏟아부은 예산만 65억 위안(약 1조2800억원)에 달하고 이후에도 수조원대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UAE도 2015년부터 가동한 ‘강우 강화 프로그램’에 최소 1800만 달러를 투입하고 매년 300번가량의 인공강우 형성 실험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다만 인공강우의 근본적인 한계는 이 기술이 마법처럼 ‘무에서 유’를 생성하지는 못한다는 점에 있다. 인공강우는 이미 존재하는 구름에 화학 물질을 투입해 빗방울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서는 무용지물이란 뜻이다. 기온도 중요한 요소다. 만약 고온·건조한 상황에서 억지로 인공강우를 내리게 하면 빗방울이 지상에 떨어지기 전에 증발해 대기 중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성공 시에도 강우량 증가율이 20% 안팎에 불과해 갑작스럽게 많은 양의 비를 쏟아내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지역 간 갈등도 무시할 수 없다. 특정 지역에서 인공강우를 만들어내면 주변 지역의 기상이 뒤바뀐다. 구름은 대기를 따라 이동하며 비를 쏟아내는데, 인공강우는 특정 지역에서 미리 구름 내 수분을 빼앗아 비로 바꾼다. 인천에서 비를 내리게 할 구름을 서울에서 미리 인공강우 구름으로 만들어버리면 사실상 인천에 내렸어야 할 비를 서울이 빼앗아가는 셈이다.

이런 문제는 국가 간 갈등으로 번지기도 한다. 특히 UAE와 오만처럼 인접하면서도 양측 모두 가뭄에 시달리는 국가의 경우 한쪽에서 인공강우를 사용하면 다른 쪽의 가뭄이 악화하는 결과가 나온다. 그럼에도 아직 과학적·국제법적으로 인공강우로 인한 강우량 감소 사실을 입증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어려워 외교적 갈등 씨앗으로 남아만 있는 상태다. 1977년 제정된 ‘환경변경기술의 군사적 또는 적대적 이용금지협약(ENMOD Convention)은 주변 국가에 위해를 끼칠 목적으로 기상을 조종하는 행위를 금하지만, 가뭄 해소나 대기 질 개선을 위한 인공강우 형성을 ‘적대 행위’로 보기 어렵다.

인공강우가 불러올 수 있는 잠재적 환경오염과 위험성도 해결하지 못한 숙제다. 인공강우가 만들어낸 빗방울은 요오드화은 같은 특수 물질을 수증기와 결합한 결과물이다. 요오드화은은 극소량의 경우 인체에 큰 해를 끼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인공강우가 보편화하고 그 빈도가 늘어나면 인체와 어떻게 상호작용할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식물·동물·토양 등에 광범위하게 분사할 경우 어떤 연쇄작용이 있을지도 미지수다.

학계에서는 무작정 중국 등 선발주자의 방식을 따라가기보다는 한국 실정에 맞는 인공강우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해동 계명대 지구환경학과 교수는 “인공강우가 국제 기준으로 보편화했을 경우 중국이 이를 통해 한국 강우량 대부분을 빼앗아가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며 “항공기를 이용해 인공강우를 만드는 기존 방법 대신 지리산 같은 고지대에서 직접 응결핵을 살포해 비가 내릴 가능성을 키우는 식의 접근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