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관세 전쟁이라는 새로운 통상 질서에 대비해 국내 산업계는 현지 생산을 확대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그간 한국 경제를 떠받친 수출 의존 구조가 관세에 취약한 만큼 인공지능(AI)을 앞세워 첨단제조업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산업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8일 산업계에 따르면 세계무역기구(WTO)는 지난 16일(현지시간) 발간한 ‘세계 무역 전망 및 통계’ 보고서를 통해 올해 전 세계 무역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에서 -0.2%로 하향 조정했다. 미국의 관세와 중국의 보복관세 등 영향이다. 이마저도 당초 이달 2일 시행키로 했던 상호관세가 90일간 유예된 것을 반영한 수치로, 상호관세가 전면 부과되면 추가적인 하락이 예상된다.
특히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무역 감소가 치명적이다. 한국의 2024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액 비중은 36.6%로 G20 국가 중 3번째로 높다. 내수 부진을 수출로 만회하는 경제 구조가 자리 잡은 상태다.
관세 전쟁 후폭풍은 이미 수치로 드러나고 있다. 미국이 지난달 12일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물리면서 지난달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액은 3억4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8.9% 감소했다.
공급망이 흔들리면 완성품 생산도 차질을 빚는다.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 등 완성재는 철강·알루미늄 등 원자재부터 관련 부품까지 포괄적이고 광범위하게 관세 영향에 노출된다. 여기에 상호관세까지 더해지면 최종 관세율은 50%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 가전업계도 여러 부속품이 철강·알루미늄 관세 영향을 받는 데다 멕시코를 생산기지로 활용해왔던 전략도 수정이 필요하다.
기업들은 급한 대로 생산기지 다변화로 활로를 모색 중이다. 현대제철은 2029년 상업 생산을 목표로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전기로 제철소를 설립할 계획이다. 포스코그룹은 현대제철의 신규 제철소에 일정 지분을 투자하는 등 경쟁사와의 ‘동침’도 불사하고 있다. LG전자는 미국 테네시 공장 증축으로 대응에 나섰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생산 거점을 재조정하고 부품 현지화를 진행 중이다. 기아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되는 미국 판매용 ‘투싼’을 미국 앨라배마 공장으로 이전하고, 미국에서 생산하던 캐나다 판매 물량을 멕시코로 넘기는 식이다.
자유무역 기반으로 성장했던 한국 경제가 살아남기 위해 AI를 중심으로 한 산업 전반의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덕파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날 정부가 반도체에 실질 GDP의 0.25%인 5조5000억원 정도를 매년 지원하면 연간 성장률이 매년 0.17% 포인트(약 3조7000억원)씩 성장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아울러 지원이 없을 경우 연구·개발(R&D) 투자 감소 등으로 성장률이 매년 0.16%포인트(약 3조5000억원)씩 감소할 것을 고려하면 반도체 지원이 GDP에 기여하는 실질 효과가 매년 7조2000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했다.
반도체 지원 부족으로 투자 시기를 놓치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경쟁국보다 낮아질 수 있다. 반도체 지원에 따라 원가 경쟁력이 달라지는 탓이다. 김 교수는 “반도체에 대한 재정 지원은 민간 투자를 유발할 뿐 아니라 반도체 기술 발전으로 산업 경쟁력이 강화하고 다른 관련 산업의 성장도 유발한다”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