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전쟁 등의 여파로 한국경제 역성장이 현실화한 가운데 국내 기업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올해 초부터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종언을 진단하며 현재 우리 기업이 체감하는 현실은 ‘게임의 규칙이 수영 종목에서 씨름으로 바뀐 수준의 충격’이라고 표현했다.
최 회장은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산업포럼’ 발족식 기조연설을 통해 우리만의 새로운 성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일본과의 경제 연대, 내수 확대를 위한 해외 인재 유입, 기존 수출 의존 경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소프트파워 강화 등 세 가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대한상의는 최 회장을 중심으로 기업 및 각계 전문가와 함께 국가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산업계 제언집을 준비 중이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도 경제계의 움직임에 주목하며 연대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올해는 한·일 수교 60주년이다. 미·중 갈등 격화로 차기 정권은 한·일 관계 재정립 필요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경제 규모가 비슷하고 저출산·고령화 등 유사한 사회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과의 연대가 글로벌 시장에서 대한민국의 발언권을 키울 방안이라는 게 산업계 일각의 시각이다. 이에 최 회장은 유럽연합(EU) 모델에 근거한 한·일 경제 연대를 언급하며 양국 협력 아이템으로 액화천연가스(LNG) 공동 구매, 탄소 절감, 반도체 및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시너지를 구상 중이다.
해외 시민을 국내로 유입하는 것은 구조적 내수 침체를 겪고 있는 우리의 당면 과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기존의 논의가 인재 유치 방안에만 집중돼 있었다면 해외 인재가 장기 거주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해 소비와 납세까지 유도해야 한다는 게 최 회장의 견해다.
반도체 수출로 급격한 성장을 이룬 SK그룹 회장이기도 한 그가 수출 의존형 경제 구조의 한계를 지적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최 회장은 “하드웨어 수출뿐 아니라 전략적인 해외 투자, 지식재산권 수출, 한식 세계화 등 소프트파워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밝혔다. 대선이 임박하면서 정치권이 산업계의 다양한 제안을 어떤 식으로 반영할지 관건이다. 최 회장은 최근 규제뿐 아니라 연구·개발(R&D)·세제·금융·인력을 비롯해 지방자치단체 권한 이양까지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한 번에 풀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메가 샌드박스’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혜원 기자 ki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