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제12대 대통령 전두환은 취임사에서 “우리는 시련으로 얼룩진 구시대를 청산하고 새 시대를 꽃피우는 제5공화국 관문 앞에 모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새 정치, 개혁, 발전이 새 시대정신”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새 정치는 유신정권처럼 국민을 억압하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는데 말과 행동은 전혀 딴판이었다.
김영삼정부는 1993년 군의 구시대 청산을 내세워 육군 사조직 하나회를 전격 해체했다. 이 숙군 조치는 역사에 남는 청산 작업으로 평가된다. 그해 8월에도 잘못된 구시대 관행 척결을 명분으로 금융실명제를 도입했다.
2017년 문재인정부도 “촛불혁명은 구시대를 청산할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하며 출범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첫째로 강조한 청산 대상은 ‘권위적인 대통령·청와대 문화’였다. 이를 없애려고 ‘광화문 대통령 시대’ ‘퇴근길 시민과의 대화’ ‘광화문광장 토론회’를 약속했지만 이행된 것은 없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도 그제 전당대회에서 구시대 청산을 언급했다. 그는 “민주주의 복원, 성장 회복, 격차 완화가 국민통합의 길이다. 불평등과 절망, 갈등과 대결로 얼룩진 구시대의 문을 닫고 국민대통합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대결 정치, 저성장, 불평등을 청산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구시대 청산은 과거의 잘못된 것을 깨끗이 씻어내는 걸 의미한다. 정치권에선 주로 전 정권 잘못을 지적하며 새 정권의 출범 의의를 부각할 때 쓴다. 하나회 숙청처럼 부당한 기득권 세력을 쳐내는 명분이 되기도 하고, 권위주의 타파와 같이 잘못된 문화의 근절을 선언할 때 쓰기도 한다. 새 정권 출범에 앞서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 그래야 제대로 쇄신할 수 있고 새 정부도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남은 대선 기간 다른 후보들도 현 시대 시급한 청산 과제가 뭔지 적극 제시하면 좋을 것이다. 뭘 청산할지, 어떻게 쇄신할지, 그것을 누가 잘 실천할지가 유권자들이 차기 대통령을 뽑을 때 중요하게 보는 잣대이기도 하다.
손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