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엄한 북베트남에 교두보… 자립 돕는 선교로 복음 ‘파종’

입력 2025-04-29 03:00
베트남 북부에 사는 소수민족 여성이 마이크로크레디트 프로그램을 통해 마련한 돼지우리에서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 이 선교사 제공

오토바이와 쌀국수, 몸에 착 달라붙는 전통의상 아오자이로 상징되는 나라 베트남. 최근 ‘포스트 차이나’로 주목받으며 2022년엔 세계 최상위권인 8%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모세(활동명·60·사진) 선교사가 수도 하노이에 입성한 1996년 3월 당시의 베트남은 닫힌 땅이었다. 도이머이(개혁개방) 정책이 시행됐지만 정부의 강력한 통제 아래 신앙과 표현의 자유는 엄격히 제한됐다. 엄혹한 시대에 그는 하노이를 중심으로 북부 지역에 조심스럽게 믿음의 씨앗을 심기 시작했다. 삶을 걸고 심은 씨앗은 29년을 견디며 싹을 틔우고 있다.

지난 25일 오토바이를 몰고 하노이 시내 한 식당을 찾은 이 선교사를 만났다.

“평양의 봉수교회처럼 베트남 정부가 공식 인정한 항자교회 하나만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감시와 통제가 일상이었죠. 전화 이메일 우편 팩스 모두 도청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베트남에 발 디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이모세 선교사가 베트남 하노이에서 운영했던 기념품점 전경이다. 이 선교사 제공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산하 총회세계선교회(GMS) 파송 선교사인 그는 살아남기 위해 ‘비즈니스맨’이라는 신분을 택했다. 1998년 하노이에 작은 수제 기념품 가게를 열고 조심스럽게 현지에 스며들었다. 삶을 나눈 이들이 그의 첫 선교 대상이 됐다. 집에서 일하던 가사 도우미가 첫 번째 세례자가 됐고 이어 가게 직원이 두 번째 세례를 받았다. 당시 수제 기념품을 납품하던 소수민족과도 이때 관계를 맺었다.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세계 복음주의의 축제인 제4차 로잔대회에선 ‘일터 사역’이 단연 주목받았다. 비즈니스 애즈 미션(BAM)을 선교의 미래로 봤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선교로서 비즈니스는 생경한 단어였다. 한국교회 안에서는 반감이 더 심했다. ‘왜 선교사가 장사를 하느냐’는 비난이 그를 따라 다녔다.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비즈니스 신분 덕분에 자연스럽게 베트남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복음이 흘러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최근 들어 비즈니스 자체를 선교로 바라보는 변화를 보면서 내가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위로를 받습니다.”

8년간의 비즈니스 경험은 이후 그의 사역에 단단한 철학적 기반이 됐다. 관계 중심의 선교, 자립을 중시하는 원칙이 이 시기에 뿌리내렸다. 이 선교사는 이후 굿네이버스 베트남 북부 지부장으로 10년 동안 일하며 지역개발과 아동후원 사업을 이끌었다. 퇴임 후에는 베트남 북부 지역의 몽족(Hmong) 교회들을 대상으로 ‘교회주도형 마이크로크레디트’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소액 대출로 가난한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이 프로그램은 2017년 본격 진행됐다. 현재까지 6개 교회가 참여해 100% 상환율을 기록하고 있다. 각 교회에서는 8~10명이 소그룹을 구성해 개인당 800만동(약 40만원)을 대출받는다. 참여자들은 돼지나 닭을 키우거나 레몬그라스를 재배하는 방식으로 자립 기반을 다진다. 1년 만기 상환이고 연 3% 이자는 교회에 헌금한다. 소득이 늘면 교회 헌금도 늘어나 자립교회가 되도록 돕는 구조이다.

“비즈니스 경험이 없었다면 이런 자립 모델을 이해하거나 적용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퍼주기식 지원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가게 돕는 것. 그것이 진짜 선교입니다.” 이 선교사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이 선교사가 교수로 재직 중인 하노이복음신학교 학생과 관계자들. 이 선교사 제공

베트남의 복음화율은 현재 1.5%에 불과하다. 하노이를 비롯한 북부 지역은 복음화율이 더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 사회주의 체제하에서는 공식적인 복음화율 집계조차 어렵다. 복음 전파는 여전히 조심스럽고 더디다. 이 목사는 외국인 종교활동이 일부 허용된 3년 전부터 하노이선교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최근 그의 사역은 한베가정(한국-베트남 국제결혼으로 이뤄진 가정)과 가나안 한인 성도(교회를 다니지 않는 신앙인)를 중심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베가정 2세대는 한국어와 베트남어를 모두 구사하는 인재로 성장하고 있다. 이 선교사는 “베트남은 다문화에 대한 편견이 적고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문화적 특성이 있다”며 “한류의 영향과 맞물려 한베가정 2세대는 베트남 현지에서 높은 잠재력이 있다. 미래 복음의 통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노이=글·사진 손동준 기자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