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소하게 살며 아낌없이 베푼
김장하 선생과 그의 장학생들
살 만한 세상이라는 희망 줘
탐욕스럽고 남을 짓밟으며
욕망의 바벨탑 쌓는 시대
진정한 삶의 가치 돌아보게 해
김장하 선생과 그의 장학생들
살 만한 세상이라는 희망 줘
탐욕스럽고 남을 짓밟으며
욕망의 바벨탑 쌓는 시대
진정한 삶의 가치 돌아보게 해
“돈이라는 게 ○하고 똑같아서 모아놓으면 악취가 진동을 하는데 밭에 골고루 뿌려놓으면 좋은 거름이 된다.” 평생 자신은 자가용도 없이 검소하게 살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남에게 베풀며 살아온 김장하(81) 선생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와 책 ‘줬으면 그만이지’가 역주행하고 있다. 2년 전 제작한 다큐멘터리의 영화 버전도 극장에서 재개봉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요지를 낭독한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김장하 장학생’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중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김 선생은 경남 사천·진주에서 19세 때부터 60년간 한약방을 운영하며 번 돈을 1000여명이 넘는 학생에게 장학금으로 주고 사회 곳곳에 아낌없이 기부했다. 1983년 100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진주에 명신고등학교를 세우고 자리를 잡자마자 1991년 국가에 헌납했다. 2022년 한약방을 닫을 때도 30억원이 넘는 재산을 국립 경상대에 기부했다. 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한 쉼터를 만들었으며, 사회·문화예술·여성·인권·지역언론 등 그의 후원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그러면서도 소문으로만 무성했을 뿐 받은 사람은 있는데 준 사람은 없는 기이한 일이 50년간 이어졌다.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렸기 때문이다. 한약방에 있는 금성사(현 LG전자) 상표가 박힌 수십 년 된 낡은 에어컨과 안감이 해진 재킷 등은 그의 검소함을 드러내준다.
그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이들은 한결같이 “내 삶의 지표가 됐다” “최악의 선택을 피하게 하는 브레이크 역할을 했다” “(이렇게 하면) 김장하 선생에게 부끄럽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교 졸업 때까지 장학금을 받은 문 전 헌법재판관도 2019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제가 살아가는 것은 그분(김장하 선생) 말씀을 실천하는 것, 그것을 유일한 잣대로 살아왔다”고 했다. 당시 6억원의 재산신고를 했는데 평균 헌법재판관 재산(20억원가량)에 비해 너무 적은 것 아니냐는 국회의원 질문을 받고 “결혼할 때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는데 평균 재산을 넘어선 것 같아 반성하고 있다”고 해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가구당 평균 재산이 3억원 남짓인데 실제 본인 재산은 4억원에 조금 못 미친다며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1923년 진주에서 일어난 백정들의 신분철폐 운동인 형평운동 70주년을 맞아 1992년 형평운동기념사업회를 만들고 공평한 세상을 향한 초석을 놓은 것도 김 선생이다. 초대 이사장을 맡은 그는 “새로운 차별을 없애자는 취지로 만들었는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여성·장애인·노인·지역 간 차별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현존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어른다운 어른,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는 시대다.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극단적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판을 치고 탐욕과 권력욕으로 서로 물어뜯기 바쁘다. 권모술수와 거짓이 밥 먹는 것처럼 일상화됐다. 눈이 침침하고 귀가 멀어도 노욕을 내려놓지 못한 ‘꼰대’들이 득시글거린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풍유시 ‘불치사(不致仕)’에서 눈이 어두워져 공문서를 읽지 못하고 허리가 굽어도 명예와 이익을 탐하며 관직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을 꾸짖었다.
이런 탐욕스러운 세상에서 아낌없이 나눠주며 다같이 잘 사는 평등한 세상을 꿈꿨던 김장하 선생의 삶의 궤적은 신선한 울림을 준다. 김 선생과 그의 혜택을 입은 ‘김장하 키즈’가 사회 곳곳에서 각자의 본분을 다하며 휘청대는 나라를 곧추세우고 살 만한 세상으로 지탱해주고 있다.
2019년 제자들이 몰래 생일파티를 열어줬을 때 김 선생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노력해 왔지만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다. 앞으로 남은 세월은 정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자신이 번 돈을 모두 어려운 사람들과 사회를 위해 기부하고도 부족하다고 얘기하는 그를 보면서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것들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맡아 잠시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이다. 그런데도 아등바등 세상의 것을 움켜쥐고 남을 짓밟으며 욕망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현세대에 ‘김장하 정신’은 진정한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이명희 논설위원·종교전문기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