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재 목사의 후한 선물] 때를 따라 아름답게

입력 2025-04-29 03:26

거리마다 화려하게 피었던 벚꽃이 순식간에 바람에 날아갔다. 잠깐 머물렀던 아름다움 뒤로 덧없음이 느껴진다. 우리도 자녀의 방황이나 가족의 아픔 앞에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라고 한숨짓기도 한다. 인생의 황혼기에 이른 전도서 기자도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인생의 허무함을 토로한다.(전 1:2)

하지만 전도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라고 고백한다.(전 3:11) 이 말씀은 우리 인생을 모든 순간에 아름답게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관점을 보여준다.

여기서 ‘아름답다’는 히브리어로 ‘딱 들어맞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특정한 ‘좋은 때’만 아니라 ‘모든 때’에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우주 만물이 심히 아름답다. 그중에서도 우리 인생은 최고의 작품이다. 걸작품은 어디에 두어도 아름답게 빛난다.

아름다운 걸작품이 나오기까지는 깎고 닦으며 태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 인생의 작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듬어 가신다. 삐져나온 부분을 뽑아내고 깨뜨리고 가지 치고 닦아서 어디에 두어도 빛이 나는 걸작품으로 만드신다.

4년 전 교회에 처음 나온 성도의 이야기다. 그는 폐암 말기였다. 항암제 투여와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었다. 유학 보낸 아들은 조현병이 발병해 귀국했다. 그의 형제들도 간암과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이어서 본인이 아픈 몸을 이끌고 아흔이 넘은 부모님을 모시고 있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점잖고 믿음 좋은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던 어느 모임 날 ‘성령의 고발’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던 중 그의 아내가 평소 하지 못했던 남편에 관한 나눔을 했다. 모임에서는 한없이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남편이 가정에서는 폭군처럼 군림하며 가족들에게 많은 상처를 줬다는 ‘고발’이었다. 예상치 못한 아내의 나눔을 들은 그는 그동안 자신이 가족에게 준 상처를 전혀 몰랐는지 머리를 싸매며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변명 없이 자기 죄를 즉시 인정하고 아내와 자식들에게 구체적으로 사과했다. 자칫 당황스러운 자리일 뻔했는데 회개하니 그 자리에서도 아름답게 빛났다.

이후 암이 진행되어 호흡이 힘들어진 상황에서도 그는 소그룹 모임이 있는 날이면 “하나님이 상태를 갑자기 좋게 해주셔서 앉아 있게 되었다”며 소파에 기대서라도 참석했다. 게다가 부모님을 교회로 인도했고 항암 중에도 교회 양육과 중보기도에 열심히 참여했다. 질병의 때에도 아름답게 빛나는 하나님의 걸작품이 된 것이다.

그가 가장 애통해했던 것은 아버지를 끝내 용서하지 않은 둘째아들이었다. 아들은 아빠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쇠약해진 아빠에게 물을 뿌리거나 툭툭 치고 지나가는 행동으로 마음에 쌓인 화를 쏟아냈다. 하지만 그는 그때에도 자기가 ‘문제 아빠’였음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아들의 화를 잘 받아냈다. 건강할 때는 전혀 알지 못했던 자기 모습을 암의 때를 거치며 깨닫고 회개하니 다하지 못했던 아빠의 때를 그렇게나마 보내게 된 것이다.

이 성도가 교회로 오던 순간부터 천국에 가는 순간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한 소그룹 리더는 임종예배 때 그에게 이렇게 인사했다. “구원받은 인생의 최대 목표인 천국 가게 되어서 정말 부러워요. 거기서 자리 잘 잡아놓고 기다려요. 우리도 꼭 천국 가서 다시 만날게요.” 믿음의 공동체에서 함께 회개하며 천국 소망을 품으니 죽음의 자리에서도 우리는 아름답다.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때에 아름답게 하신다. 질병의 때, 좌절의 때, 갈등의 때, 심지어 죽음의 때까지도 하나님의 손안에서 우리는 걸작품이 된다. 원치 않았던 때가 불쑥 찾아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처럼 보여도 그 모든 때가 우리를 깎고 다듬어 더 아름답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가정의 달, 우리가 먼저 배우자에게 사과하고 자녀의 아픔을 이해하며 부모에게 감사하면 좋겠다. 오늘도 나를 붙들어 주시는 주님의 손에 내 삶을 맡길 때, 우리는 ‘때를 따라 아름답게’ 빚어져 가는 주님의 영원한 걸작품이 되어 간다.

(우리들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