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의 손예솔(가명)씨는 10년 전 부모의 이혼으로 가정 밖을 전전하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크게 절망했다. 그러나 낙태 대신 출산을 결심했고, 교회 공동체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피나는 노력 끝에 한 공공기관에 취업해 경제적 자립도 이뤘다.
청소년 시절 미혼모가 된 김미윤(가명·28)씨는 출산 뒤 여러 위탁시설을 전전하다 2년 전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해 현재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김현준(가명·23)씨도 10대 시절 사귀던 여자친구가 출산 후 그의 곁을 떠난 아픔이 있지만, 지금은 미용사로 일하며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다.
청소년 시절 따뜻한 가정을 경험하지 못한 채 거리를 배회하던 세 사람은 모두 임귀복(63) 주영광교회 목사의 ‘아이들’이다. 그는 최근 서울 강서구 교회에서 만나 “우리는 그저 위기 청소년, 미혼모들이 내민 손을 잡아주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위기 청소년 300명 든든한 울타리
임 목사는 지난 13년간 300명이 넘는 위기 청소년을 돌봤다. 절망 속에 있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한 외로운 아이들은 든든한 지지대를 딛고 일어나 자립했다. 특히 40명이 넘는 아기들이 낙태 위기를 넘고 태어났다. 임 목사는 “미혼모들이 교회에서 복음을 들은 뒤 아이를 지키기로 선택했다”며 “입양 보낸 아이는 단 2명뿐이다. 대부분이 아이들을 직접 키운다”고 했다.
임 목사는 2011년 위기 청소년 지원단체인 ㈔위키코리아를 설립했고 대표로도 활동한다. 지난해에만 청소년과 청년 등 15명에게 주택 보증금 지원을 제공했다. 현재 교회가 관리하는 자립관은 8개의 원룸과 투룸으로 운영되고 있다.
간호조무사가 된 미혼모, 미용 기술자가 된 미혼부, 공무원이 된 청년들…. 세상이 보기에 이들의 ‘성공’은 화려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 값지다고 임 목사는 강조한다. 검정고시를 거쳐 학업을 이어가고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키우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는 위대한 성취이기 때문이다. 임 목사는 “세상에 태어날 수 없었던 아기들이 자라고 있다”며 “17~18세 어린 엄마들이 ‘내 아이는 나처럼 살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감동적”이라고 했다.
만나하우스·일진캠프 ‘진짜 가족’
위키코리아는 설립 초기부터 위기 청소년을 위해 무료급식을 운영했다. 소년원·교도소 교정 사역, 바리스타와 재봉틀 수업 등 아카데미도 지속해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일 수 없을 땐 도시락과 생필품을 배달해주기도 했다. 무료급식은 2023년 7월 서울 화곡역에 문을 연 ‘만나하우스’를 통해 더욱 활발해졌다. 현재는 재정난으로 평일 낮에만 열린다. 그러나 24시간 운영이 되어 갈 곳 없는 아이들이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주길 바란다. 임 목사는 “밤에 잠 못 이루는 청소년들이 찾아갈 곳, 위기에 노출되지 않고 안전한 곳이 필요하다”며 “이곳은 단순한 급식소가 아니라 예수님과 좋은 어른들,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만남이 이뤄지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2015년 시작된 ‘일진캠프’는 위기 청소년들을 위한 수련회다. 이곳에서 청소년들은 자신의 편이 되어줄 멘토를 만난다. 한때 거리를 방황하던 이들도 멘토가 돼 활동하고 있다.
“첫 멘토 모집에 120명이 지원했어요. 캠프에서 1대1 결연을 한 아이들이 멘토를 따라다니는데 심지어 화장실까지 따라가기도 했죠. 이유를 물으니 ‘내 편이 생겼잖아요’라고 하더군요. 멘토가 이들에게 큰 안정감을 준 거죠.”
현재 30커플이 넘는 멘토·멘티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명절에는 멘토 집을 방문하고 생일에는 미역국을 함께 나눈다. 어떤 멘토는 자신의 집에 멘티 방을 마련하는가 하면 멘티들의 취업을 함께 알아보고 면접장까지 동행하는 멘토들도 있다. 임 목사는 “이게 진짜 가족”이라고 말했다. 위키코리아는 자격증 취득 교육과 취업 지원, 일자리 소개 등 자립에 실질적 필요를 채워준다.
임 목사는 “아이들이 자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언제든지 밥을 먹을 수 있고 거주할 공간이 필요하다”며 “여기에 멘토링을 통한 관계 맺기, 심리 치료 지원 등 지속적인 돌봄이 있어야 진짜 자립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결과 없어도…계속 기다릴 것”
위키코리아와 동역하는 주영광교회는 작은 공동체지만 위기 청소년을 돕는 일을 놓지 않고 있다. 사역의 지속성을 위해 재정적 어려움 등 극복해야 할 과제는 많지만, 현재 온누리교회 등과 동역하면서 한 영혼을 살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임 목사는 “세상은 즉각적인 결과가 없으면 시작하지 않지만, 교회는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는 예수님의 지상대위임령을 이 사역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 목사를 통해 복음을 알게 된 100여명은 이 교회에 정착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임 목사는 “우리는 위기 청소년, 미혼모를 위해 항상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다”며 “이곳에서 새로운 만남이,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조용히 커가길 바란다”고 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