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종 표준 시험법 개발 마쳐
국내 유입 우려종 등 선제 관리
올해 AI 대응 훈련 실시할 계획
지자체에 기술 표준 제공하는 일도
전문가 “민간 병원 검사 기관 포함
진단 역량 대규모로 키우는 게 중요”
국내 유입 우려종 등 선제 관리
올해 AI 대응 훈련 실시할 계획
지자체에 기술 표준 제공하는 일도
전문가 “민간 병원 검사 기관 포함
진단 역량 대규모로 키우는 게 중요”
한국은 코로나19 유행 초기 2년간 감염률과 사망률이 세계 최저 수준을 유지해 ‘방역 모범국’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배경에는 이른바 ‘3T(Test·Trace·Treatment, 검사·추적·치료) 전략’이 있었다.
3T의 첫 번째가 ‘진단’ 영역이다. 신종 감염병은 신속·정확한 진단과 조기 확산 차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가 감염병 컨트롤타워인 질병관리청은 이런 코로나19 팬데믹 극복 경험을 토대로 향후 출현할 ‘미지의 감염병(Disease X)’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준비를 계속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표준 검사법의 개발, 공공 검사기관 보급, 인력 교육 및 숙련도 평가 등 3가지 핵심 요소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해 언제든 최적의 검사가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정확한 감염병 검사, 왜 중요한가
정확한 감염병 검사는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격리, 치료 등 적절하고 신속한 대응을 가능케 해 국민 피해와 사회 혼란을 최소화한다. 진단이 정확하지 않으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감염병 환자를 놓쳐 병이 지역사회로 확산할 수 있다.
코로나19를 예로 들면 국외 감염병 유행 동향을 상시 감시하던 질병청은 2019년 중국에서 원인 불명 폐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빠르게 인지했다. 이후 검사법을 선제적으로 개발·구축해 국내 유입된 첫 번째 코로나 환자를 신속하게 찾아낼 수 있었다. 첫 환자 발견 뒤에는 격리, 역학조사 등 구축된 방역체계에 따른 조치가 빠르게 이뤄져 초기 대응을 잘 해낼 수 있었다.
질병청 박재선 진단관리총괄과장은 28일 “진단의 정확성은 감염병 대응의 첫 단추”라며 “개발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치료제와 백신이 도입되기 전까지 감염자를 빠르게 찾아내 유행 확산을 억제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질병당국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으며 진단 검사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메르스는 국내 최초 사례라는 특수성 때문에 진단이 늦어진 탓에 병원 내 급격한 확산에 따른 사회적 혼란을 불렀다. 당시 ‘인덱스 환자(1호 환자)’가 조기에 진단돼 역학조사가 이뤄졌다면 확산의 규모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란 평가가 많았다. 질병청(당시 질병관리본부)은 이를 계기로 2017년 조직개편을 통해 ‘진단관리총괄과’를 신설하고 감염병별 검사법 개발-검증-보급-교육·평가 작업을 본격화했다.
감염병 검사의 ‘기준’을 정하다
질병청은 국민 건강에 위해를 끼치거나 향후 유행이 우려되는 신·변종 감염병을 ‘법정 감염병’으로 정해 관리하고 있다. 현재 1~4급 89종(세부 126종)이 지정돼 있다. 법정 감염병은 아니더라도 해외에서 유행 중이거나 원인 불명의 감염병도 상시 모니터링한다. 특히 이런 감염병들의 국내 유입이나 유행을 인지하려면 검사의 기준이 되는 ‘표준 시험법’을 다양하게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질병청은 지난해 말 기준 127종 감염병에 대해 227건의 표준 시험법을 마련했다. 자체 개발 시험법은 물론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공인한 검사법도 포함돼 있다. 검사법은 외부 전문가 심사를 통해 성능과 타당성을 과학적으로 검증받았고 최신 기술을 반영해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표준 시험법이 확립된 감염병으로는 조류 독감(AI), 에볼라, 라싸열, 마버그열, 크리미안콩고출혈열, 페스트 같은 1급 감염병 뿐 아니라 홍역, 백일해, 엠폭스, 니파 바이러스감염증(비법정 감염병) 등 다양하다. A형간염이나 독감, 수족구병, 노로바이러스감염증, 쯔쯔가무시증 등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감염병들도 있다. 또 127종에는 포함돼 있지 않으나 원인 모를 감염병을 규명하기 위한 검사 기술도 별도로 구축 중이다.
박 과장은 “특히 국내 유입 가능성, 위험도를 기준으로 20여종의 ‘미래 감염병’을 선정해 2016년부터 선제적으로 검사법을 개발하거나 기존 검사법의 성능을 보완하고 있다”고 했다. 질병청은 지난해 11월 국내 유입이 우려되는 니파 바이러스러스감염증 대응을 위한 도상 훈련(TTX)을 벌인 바 있다. 올해는 AI의 국내 발생 및 전파 대비 훈련을 계획하고 있다.
전국 어디서나 같은 방식으로 검사
일반 감염병은 병·의원에서도 검사할 수 있지만 해외에서 들어오거나 원인을 알 수 없는 감염병 등은 17개 시·도 보건환경연구원과 보건소, 질병청 지역질병대응센터 등 전국의 공공검사 기관에서 정밀 검사를 수행한다. 감염병은 전국 어느 지역에서나 발생할 수 있으며 이때 지자체가 검사의 최전선이 되는 셈이다. 질병청은 모든 지자체가 ‘동일한 기준, 동일한 수준’으로 검사할 수 있도록 검사 기술, 인력 교육, 예산 등을 지원하고 있다. 즉 ‘국가의 표준 실험실’로서 전국 공공검사실의 검사 절차와 과정 등에 ‘표준’을 제공한다. 보급된 시험법에 대해선 정확한 검사가 이뤄지도록 매년 교육·평가를 실시해 우수한 검사 역량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수행하기 어려운 고난도 검사법이나 고위험 병원체에 대한 검사는 질병청이 직접 맡는다.
질병청은 지난해 말 기준 평균 79종 감염병에 96건의 시험법을 전국 시·도 보건환경연구원에 보급했다. 보급된 시험법으로 매년 100만건 넘는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 25일 찾아간 서울 서초구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에서도 이재인 팀장을 비롯한 10여명의 신종감염병검사팀이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이들은 평상시에는 감기나 인플루엔자, 코로나19, 메타뉴모바이러스 등 일반 감염병 모니터링을 한다. 대부분 의료기관에서 의심 검체 검사가 요청되고 산후조리원, 어린이집 등에서도 간혹 의뢰된다. 고위험 병원체 검사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일반 감염병을 포함해 월평균 검사 건수는 400건이다. 최근 동남아에서 유행하는 홍역이나 겨울과 초봄에 발생이 잦은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등의 검사 의뢰가 많으면 700건까지 늘 때도 있다. 연간으로는 4200~4500건의 검사를 담당한다.
이재인 팀장은 “요즘 코로나 기간에 거의 없었던 메르스 검사가 여행이 풀리며 연간 20여건씩 들어오고 있다. 올해도 최근까지 벌써 10여건이 진행됐다”면서 “메르스 검사는 주로 금요일에, 또 밤에 의뢰되는 경우가 많은데 질병청의 시급성 요청에 따라 4~6시간 만에 결과를 내고 있다”고 했다. 엠폭스나 홍역도 1급 감염병은 아니지만, 그에 준해 하루 내에 빠르게 검사 결과를 내놓도록 노력 중이다.
이 팀장은 향후 팬데믹 가능성이 큰 신종 감염병으로 AI를 제일 먼저 꼽았다. 또 기존 사람 인플루엔자의 재조합으로 출현할 수 있는 신종 플루나 최근 인도 등지에서 유행하는 높은 치명률의 니파 바이러스감염증도 사람 간 전파가 발생하면 대유행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그는 내다봤다.
이 팀장은 “질병청은 표준 검사법들을 확립해 시·도 보건환경연구원에 기술 이전하고 정도 관리를 해 줌으로써 검사의 일관성,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역 보건환경연구원들은 이에 발맞춰 국가 및 자치단체의 감염병 대응에 중요한 한 축을 맡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규모 진단 역량 갖춰놔야
일각에선 신종 감염병 대응을 위해 표준 검사법 확보에 나아가 민간 부문을 포함한 대규모 진단 역량을 갖춰놔야 한다는 전문가 조언이 나왔다.
이혁민 연세대의대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2015년 메르스 유행 당시를 복기해 보면 검사법을 확립해 놓고도 검사 역량이 부족해 병원 내 전파를 효율적으로 막지 못했다는 점을 교훈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검사 시약(키트)의 시장성이 없더라도 과감한 투자를 통해 미래의 발생 상황에 대비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공공검사 기관에 갖춰놓은 고위험 병원체 검사용 ‘생물안전 3·4등급(BL 3·4)’ 밀폐 실험실의 자동화 시스템 도입도 권고됐다. 이 교수는 “현재 대부분의 BL 3·4 등급 시설은 사람이 수기로 검사를 진행하는데, 검사량이 많이 몰릴 경우를 대비해 24시간 자동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검사 역량의 95%를 차지하는 민간 검사기관에 BL 3·4등급 시설이 보다 많이 갖춰지도록 투자를 늘릴 필요도 있다.
이 교수는 “우리가 자동차 보험을 들 듯 미지의 감염병 대응을 위한 보험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미국·유럽도 그렇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종 감염병 대응 비용이 나중에 실제 발생 시 치르는 대가보다 훨씬 적다는 연구 보고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