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00년 5.4%에서 2024년 2.1%로 급락했고, 경제활력은 크게 둔화돼 실제 국내총생산(GDP)이 잠재 GDP에도 못 미치는 현상이 2020년 이후 지속되고 있다. 올해 1분기에는 GDP가 -0.2% 역성장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2.0%에서 1.0%로 크게 하향 조정했으며, JP모건 등 0%대 성장률을 점치는 투자은행(IB)들도 있다. 지난해 성장률이 1.4%임을 감안하면 이제 우리 경제는 1%대 성장이 뉴노멀이 된 듯하다.
저성장이 고착화될 경우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계층이 있다. 바로 ‘청년’이다. 저성장은 청년고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3월 청년 고용률은 44.5%로 지난해 5월부터 11개월 연속 하락했고, 청년 실업률은 2개월 연속 7%대다. 기업은 ‘생존’이 일차적 목표다.
성장률이 낮아지면 미래 전망이 불투명해져 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는 확신이 낮아진다. 이 경우 사업주들은 단기적인 경영성과를 중시하게 되고, 업무교육에 따른 비용부담이 큰 청년보다 경력자를 채용할 유인이 높아진다. 신산업 부재도 청년 채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비즈니스는 경험보다 창의성이나 추진력이 상대적으로 중요해 청년 고용 니즈를 발생시키는데, 지금 우리에겐 그런 산업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청년실업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경제적으로 인적자본 손실과 성장잠재력 훼손으로 이어진다. 청년들이 업무를 통해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습득할 기회를 상실할 경우 인적 자본의 축적은 방해받는다. 더욱이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기 곤란해질수록 자신의 전공이나 적성을 살리지 못할 가능성도 커져 노동력의 효율적인 배치도 어렵게 된다. 결국 저성장이 청년고용 악화의 주요한 원인이지만, 이는 다시 노동력의 질적 양적 손실을 가져와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악순환을 발생시킬 수 있으므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이 미래에도 사업이 지속되고 발전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일이다. 이러한 확신은 경제의 활력이 높아질 때만 가능하다. 우선 기업 규모에 따른 차별적 규제를 철폐해 보다 많은 중견기업과 대기업이 나와야 한다. 이는 곧 청년들이 선호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주행하는 법인·상속 세제도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 보탬이 되도록 개편해야 한다.
산업구조적 측면에서는 새로운 산업의 출현과 발전을 유도해야 한다. 지금 세계경제는 통상환경 악화로 제조업과 교역을 통한 성장이 정체되고, 서비스와 내수 부문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활로가 모색되고 있다. 이들 분야에서 신산업들이 많이 생겨나도록 각종 규제와 진입장벽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행정규제기본법상 임의 규정인 네거티브 원칙(우선 허용·사후 규제)을 강행규정으로 전환하고, 규제 샌드박스에서 성과가 입증된 신기술에 대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신법을 지체없이 제정해야 한다.
노동유연성 확보도 시급하다. 노동시장 보호 논의가 ‘정년 연장’ 등 기존 일자리에 집중되면서 새로 진입하려는 청년층의 고용불안을 심화시키고 있다. 호봉제에 기반한 임금체계 대신 능력에 따라 임금을 받는 시스템을 확산해 청년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낙망은 청년의 죽음, 청년의 죽음은 민족의 죽음’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시대 상황이 달라 낙망의 이유야 다르겠지만, 민족의 미래인 청년들을 실업의 고통에 방치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