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선교, 마닐라 ‘스모키 마운틴’ 들른 게 결정적 계기”

입력 2025-04-29 03:07
이철용 목사가 필리핀 타를라크주립대 앞에 있는 ‘카페 커먼 그라운드’에서 “필리핀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하며 미소짓고 있다.

이철용(62) 목사를 필리핀 선교사로 인도했던 출발점은 ‘옥수동 달동네’ 경험이었다.

1970년대 서울 옥수동은 즐비한 판잣집과 공동변소에 기대 위태롭게 살아가는 도시 빈민들의 보금자리였다. 3살 무렵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줄곧 시장에서 노점을 하며 가족을 돌봤다.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 진학이 어려웠던 이 목사는 10대 초반 공장 근로자가 될 운명 앞에 섰다.

“그래서 늘 수업을 마치면 교회에 가서 ‘중학교에 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 ‘양친회’라는 단체를 알게 됐고 이곳을 통해 미국 대학생과 연결되면서 중학교에 다닐 수 있었어요. 이후 덕수상고에 진학했습니다. 은행원이 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이 목사의 진로는 또 한 번 바뀐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 참석했던 부흥회에서 목회자로 서원한 뒤 장로회신학대에 진학한 것이다.

“이만했으면 좀 편해질 만도 한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대학 재학 중엔 학교 이전 문제로 학내 갈등이 극심했고 신학대학원에 가서는 학내 시위 전력 때문에 꼬리표가 따라다녔죠. 그저 묵묵히 공부만 했고 다행히 목사안수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목사는 부목사로 사역하던 교회에서 사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온 나라가 경제난을 겪게 되면서 교회도 인력을 감축했다. 생활은 극도로 어려웠지만 아내 양미강(전 역사엔지오포럼 상임대표) 목사와 함께 외국인 근로자와 장애인 사역을 시작했다. 필리핀과 만난 건 2006년이었다.

건강이 좋지 않아 방문했던 필리핀 마닐라에서 ‘스모키 마운틴’에 들른 게 결정적인 계기였다. 스모키 마운틴은 마닐라 톤도 지역에 있는 대규모 쓰레기 매립지로 이곳에서 내뿜는 유독 가스와 악취 때문에 붙은 별칭이다.

이 목사는 “쓰레기 더미에서 어린아이들이 맨발로 쓰레기를 뒤지는 모습을 본 순간 어릴 때 옥수동에서 받았던 사랑을 갚아야겠다는 강한 부름을 받았다”면서 “귀국 후 신학대 동문과 CAMP를 설립하고 필리핀에 터를 잡게 됐다”고 말했다.

이 목사의 선교는 배움에서 시작한다. 마닐라 빈민 지역 바세코에 들어가 주민으로 살며 현지 NGO와 주민들에게 모든 걸 배우면서 사역 기반을 다졌다. 코로나19 때도 귀국 대신 현지에 남으면서 주민들과 신뢰를 쌓았다.

그는 “언제나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한다”면서 “단순 원조가 아니라 이곳 사람들이 변하고 공동체가 스스로 일어서도록 돕는 게 바로 내가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타를라크(필리핀)=글·사진 장창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