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강영애 (20) 교회 없던 3사관학교에 헌금 모아 예배당 세워

입력 2025-04-29 03:03
강영애 목사와 박근혜 전 대통령이 1975년 12월 서울 서대문구에 세워진 무료 야간진료소 개소식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 강 목사 제공

무료 야간진료소에서 활동하던 어느 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근혜(박근혜 전 대통령)와 나를 불러 “오동나무를 들고 가서 대구의 한 교회에 심고 오라”고 지시했다. 근혜가 이유를 묻자 “내가 대구사범학교에 다닐 때 출석하며 주일학교 반사(교사)로 섬겼던 교회”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함께 대구로 향했다. 교회에 도착해 입구 왼편엔 내가, 오른편에는 근혜가 오동나무를 심었다. 당시 그 교회는 대통령의 기억 속 작은 교회보단 훨씬 성장해 있었다.

또 다른 날엔 경북 영천에 있는 육군3사관학교를 다녀오라고 지시했다. 그곳에서 만난 황모 장군은 “3사관학교에 불교 법당은 있지만 교회가 없어 예배를 드릴 수 없고 목회자들도 오지 않는다”며 교회 건립을 요청했다. 우리는 각 교단 주요 교회들에 이 같은 상황을 알리고 헌금을 모아 3사관학교 안에 예배당을 세울 수 있었다.

근혜는 어디를 가든 항상 나를 대동했다. 나는 개신교 신자였고, 근혜는 천주교 신자였다. 그러나 진료소가 한국교회의 협력으로 운영되다 보니 목회자들과의 관계도 중요했다. 그래서 그녀가 한 번쯤은 교회를 직접 방문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소식을 전하자 목회자들 모두 자기 교회에 와주길 원했다. 결국 여러 의견을 조율한 끝에 박모 목사가 시무하던 동교동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근혜가 온다는 소식에 서울 마포구 동교삼거리는 경찰차와 형사들로 가득 찼다. 예배를 드리러 교회 안에 들어가야 하는 우리조차 접근이 쉽지 않았다. 수많은 인파가 몰리며 일대는 순식간에 마비됐다.

간신히 근혜의 손을 붙잡고 들어가 그날 예배는 드렸지만, 이후로 근혜의 교회 방문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외부의 어떤 교회를 가서 예배드리는 건 어렵다는 판단을 한 순간, 근혜는 “목사님을 모시고 청와대 안에서 예배드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 소식이 퍼지면서 각 교단에서 앞다투어 나서는 통에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언론에 근혜와 함께 있는 내 모습이 보도되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이들조차 마치 오래 알던 사이처럼 웃으며 다가왔다.

오전에 진료소로 출근하면 1층 사무실에서 나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대부분 목회자였다. 각자 교회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가능한 한 외면하지 않고 힘이 닿는 데까지 도왔다. 그것이 교회를 위한 일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진료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나는 삼각산에 올라가 기도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내가 기도하러 간 걸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찾느라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나를 만난 목사들은 하나같이 어려운 사정을 털어놓았다. 처음엔 그런 요청을 받으며 우쭐한 마음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보다 나이 많은 이들이 내 앞에서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며 점차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