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4㎜ 크기의 옴진드기가 살갗을 파고들어 끔찍하게 가렵게 하는 질환이 옴이다. 전염성이 강하고 걸린 뒤엔 쉽게 낫지도 않는 옴은 인간에게 일찌감치 혐오의 대상이 됐다. 단순히 ‘운이 나쁘다’ 수준을 넘어 일이 극도로 풀리지 않을 때 쓰는 ‘재수 옴 붙었다’ 표현이 이래서 나왔다. 과거 광주에서 열린 전국 욕쟁이대회에 나온 욕 중 화제가 된 게 ‘간에 옴이 올라서 긁지도 못하고 뒈질 놈아’였다. 5년 전 방영된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옴 벌레’는 사람들에게 불행을 안기는 젤리요괴로 묘사됐다.
걸리면 상당히 고통스럽지만 그렇다고 예방하거나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병은 아니다. 오히려 옴은 기아, 전쟁 등 열악한 생활환경이 원인으로 꼽히는 후진국형 질병으로 불린다. 우리나라도 1960~70년대에 주로 발병했고 21세기 들어 경제 성장으로 과학·의학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위생 관념이 철저해지자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옴이 최근 곳곳에서 나타나며 ‘옴 주의보’가 울리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 모 대학 기숙사에서 학생 두 명이 옴에 걸린 게 확인됐다. 지난 18일 광주 모 여고는 학내에서 옴이 발생하자 예방을 당부하는 가정통신문을 배포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옴에 감염된 환자는 2021년 4만8건에서 2022년 4만1458건, 2023년 4만7930건으로 늘어났다. 알게 모르게 ‘옴 붙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급격한 고령화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노인 요양시설이 크게 늘어나면서 부실한 환경에 놓인 곳 중심으로 면역력 떨어지는 노인 환자들 사이에 옴이 발생해 간병인, 병문안 온 가족들로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충북 영동군의 한 요양병원에선 환자 52명 중 48명이 옴에 집단 감염된 일도 있었다. 옴뿐 아니라 최근 몇 년새 빈대, 결핵 등 한국이 가난한 시절 창궐했던 병과 해충들이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나라가 부유해지더라도 취약 계층과 사각지대를 꾸준히 살펴야 하는 건 민생만이 아닌 방역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