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싱크홀은 인재다

입력 2025-04-29 00:31

천재지변이나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면 답을 찾을 수 없고, 불안과 사회적 갈등이 더 깊어질 것이다. 싱크홀, 즉 땅꺼짐도 그런 사례다.

2014년 서울 송파·잠실에서 100여개의 크고 작은 싱크홀이 발생했다. 많은 사람이 송파·잠실 지역을 방문하는 것조차 꺼릴 정도로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됐다. 공사 중인 555m 높이의 롯데빌딩이 무너지면 인근 아파트를 덮칠 것이라는 괴담까지 널리 퍼졌다.

당시 필자는 서울시 싱크홀 조사단장을 맡았는데, 싱크홀의 발생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롯데월드타워 신축 공사, 석촌호수, 노후화된 하수도관, 방치된 수도관, 지하철 공사 등이 거론됐다. 싱크홀이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다면, 싱크홀이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시민들의 불안감은 더 증폭될 상황이었다. 여러 차례 토론뿐 아니라 현장조사를 통해 지하철 9호선 3단계 공사장이 싱크홀 발생 원인으로 확정됐고, 추가 현장조사를 통해 크고 작은 10여개의 싱크홀을 발견하고 복구해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제도적 보완 또한 이뤄져 싱크홀 예방을 위한 ‘지하안전관리 특별법’이 제정돼 지하철 공사를 할 때 지하안전평가가 의무 사항이 됐다. 이 모든 과정이 서울시민에게 공개돼 싱크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상당히 해소됐다.

최근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싱크홀이 발생했다. 서울시와 부산시는 싱크홀의 발생 원인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으며, 언론보도를 살펴봐도 싱크홀 발생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한 기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예를 들면 2024년 8월 서울 연희동에서 발생한 싱크홀에 대해 언론은 노후화된 상하수도관, 지하공사, 집중호우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부산시는 여름철 폭우 당시 지하 공사장에 설치된 빗물 유입을 막는 차수벽이 유실돼 싱크홀이 발생했다고 하는데, 이런 진단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싱크홀의 본질은 땅속에 있던 흙이 어디론가 사라져 ‘빈 공간(동공)’이 생겨 지표면(도로)이 무너진 다음 땅속 빈 공간이 노출된 것이다. 땅속 흙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으므로, 지하수가 흙과 같이 움직이면서 흙탕물 형태로 지하공사장으로 지속적으로 유입돼야 땅속에 빈 공간이 생긴다. 즉 흙과 모래로 구성된 땅속에 지하수가 잘 발달해 있다면 싱크홀이 발생할 수 있는 ‘자연조건’이 갖춰진다. 유동하는 땅속 흙은 지하 어딘가에 저장돼야 하는데, 지하터널 공사장 또는 빌딩의 지하 주차장을 설치하기 위해 터파기를 하는 공사장으로 유입된다. 지하에서 공사를 하지 않으면 싱크홀은 발생하지 않는다. 싱크홀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인 것이다.

서울시에 최근 10년간 228개의 싱크홀이 발생했는데, 그 원인으로 하수도관이 50%를 점한다고 발표했다. 노후화된 하수도관을 교체하기 위한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싱크홀 발생은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고 있다. 그러나 지표면에서 4~5m 아래에 위치한 노후화된 하수도관이 싱크홀 발생의 주된 원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싱크홀 깊이가 평균 약 50㎝ 정도로 규모가 작아 통계자료에는 포함되지만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는다. 인명피해를 동반하는 대형 싱크홀은 지하 10m 아래에서 진행하는 지하 공사장 인근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하안전관리 특별법이 2016년 제정됐고 일정한 규모 이상의 지하공사를 할 때는 지하안전평가가 의무사항이다. 대형 싱크홀을 사전에 예방하려면 우선 지하안전평가 제도가 철저하게 운영돼야 하고, 지하수가 발달한 흙땅에서 진행하는 지하공사는 설계와 공사단계에서 전문적인 관리 감독을 시행해야 한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교수
부산도시환경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