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의 글로벌 기업 탐구] 가치투자 올인했던 버핏… ‘기본 충실’이 결국 차별화 열쇠였다

입력 2025-04-29 00:10

매일 6시간 독서·실수 공개 인정
2년 전 작고한 '평생 동지' 몽거와
주총서 주주들 수만명과 토론도

"위기 돌파해 급성장할 소수 존재"
韓 기업들도 버핏의 정신 새겨야

언론에 가장 많이 보도된 기업가 중 한 명은 워런 버핏일 것이다. 버핏은 ‘투자의 대가’ 혹은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지만 실은 탁월한 경영자이다.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는 현재 애플, 테슬라, 구글, 아마존 등 하이테크 기업이 대부분인 글로벌 10대 기업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태생부터 타고난 투자자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왼쪽)이 2023년 5월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그해 말 타계한 찰리 몽거 부회장. AP연합뉴스

버핏의 투자자 자질은 DNA에 새겨져 있다. 버핏은 1930년 버크셔 해서웨이 본사가 있는 미국 중서부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데, 아버지인 하워드 버핏도 1931년 오마하에서 투자회사를 설립해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버핏도 어릴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해 청소년기에 이미 상당한 자산을 축적했고, 네브래스카대를 졸업한 후 컬럼비아대 MBA 과정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월스트리트가 있는 뉴욕에 소재해 투자학이 강한 컬럼비아대에서 버핏은 ‘가치투자’의 대가 벤저민 그레이엄 교수에게 큰 영향을 받아 자신의 투자 모델을 구축했다. 투자 분야 고전인 ‘지적인 투자자’와 ‘증권분석’을 쓴 그레이엄은 단기간에 큰 수익을 노리는 투기성 투자가 아니라 내용이 충실한 기업의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 가치에 투자하는 가치투자를 주장했다.

아버지 회사와 그레이엄이 창립한 회사에서 경험을 쌓은 버핏은 32세이던 1962년 섬유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에 투자한 후 1985년에 섬유업을 매각하고 본격적인 투자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버핏은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산업의 우량 기업에 미래지향적으로 장기 투자했고 그중 일부는 자회사로 편입해 경영하며 세계 최고의 투자 기업으로 성장했다.

극단적 기본 충실이 최고의 차별화 전략

버핏의 차별적 경쟁력은 상식적 합리성에 기반한 가치투자를 극단적으로 충실하게 실천했다는 것이다. 첨단 분석 기법과 숨겨진 정보나 예측에 기반한 기발한 투자로 단숨에 고수익을 노리는 월스트리트에서 역설적으로 기본에 충실한 버핏의 모델이 차별화의 기반이 된 것이다. 버핏은 투자 대상 기업의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가장 중요하고, 기대 미래가치에 대한 정확한 계산에 기반한 장기 투자가 필요하며, 경영진의 역량과 태도가 신뢰할 수 있어야 하고, 합리적 가격에 인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가치투자 원칙을 타협 없이 철저히 지켜 왔다.

가치투자의 기반 원리는 투자뿐 아니라 기업 경영 전체의 펀더멘털이다. 버핏은 “가장 이상적인 주식 보유 기간은 영원”이라고 했는데 좋은 기업을 찾아 장기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한 투자의 본질이라는 뜻이다. 또 “주식을 사는 것은 시장 거래가 아니라 그 기업의 일부를 소유하는 것”이라는 발언은 주식 투자를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 보는 대다수 투자자들과 달리 이해관계자로서 소유주적 자세와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회사의 주식을 사는 것이 좋은 가격에 주식을 사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말 또한 기업의 내용 자체에 초점을 맞춘 투자를 지향하고 있다.

버핏의 가치투자는 특히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예를 들면 2008년 금융위기로 월스트리트 대기업들이 위기에 빠졌을 때 버핏은 홀로 성장을 계속하며 골드만삭스 등을 돕기도 했다. 코로나19 위기에도 버핏은 이미 과대평가된 주식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대폭 줄여 현금 보유량을 극대화하고 있었기에 오히려 가격이 일시 급락한 우량 기업들에 투자할 수 있었다. 최근에도 트럼프 행정부의 재등장으로 금융시장이 요동칠 때 선제적으로 대규모 현금을 확보한 버핏은 재무적 효율성 논리로 현금 보유량을 경쟁적으로 줄였던 대다수 투자기업들과 달리 계속 성장할 수 있었다.

평생 동지 몽거와 전설적 주총

버핏이 가치투자를 확립하는 데는 부회장이자 평생 동지였던 찰리 몽거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1924년생인 몽거는 버핏의 투자관에 대부분 동의하지만 일부 차이도 있어 논쟁을 서슴지 않으며 상호 보완적 시너지를 창출해 왔다. 몽거는 버핏처럼 독서광이고 기업 내용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장기 투자를 강조하지만 버핏과 달리 미국 시장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 않으며 반사회적 역효과 가능성이 큰 가상자산에도 극도로 비판적이다. 버핏은 몽거를 ‘버크셔 해서웨이의 설계자’라고 극찬했는데 매년 주주총회에서 버핏과 몽거가 하루 종일 수만명의 주주들과 벌이는 공개 토론은 전 세계 투자자들이 참가하고 싶어하는 꿈의 모임이었다.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은 매년 5월 초 오마하에서 진행되는데 2024년 주총에서는 전 세계에서 모인 4만여명의 주주가 2023년 말 99세로 타계한 몽거를 추모하는 행사를 시작으로 종일 버핏과 공개 토론을 벌였으며 버핏의 절친인 빌 게이츠와 팀 쿡도 참가해 버핏의 통찰력을 경청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소중한 기회는 올해가 마지막이 될 수 있는데, 몽거가 작고했을 뿐 아니라 버핏도 95세의 고령이라 올해 주총에서 작별을 고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기업가 정신의 핵심, 가치투자 원리

버핏의 가치투자는 진정한 차별적 경쟁우위는 오히려 기본에 충실한 데서 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버핏은 모든 면에서 철저히 기본에 충실했다. 한 가지 예는 대다수가 꺼리는 자기 실수에 대한 공개적 인정과 수정이다. 버핏은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곤 하는데 2019~2023년 주주 서한에서 자신의 실수를 16번이나 언급했다고 한다. 잘못은 공개하고 인정해야 바로잡을 수 있고, 그 어떤 기업도 오류가 전혀 없는 완벽한 경영을 할 수는 없으므로 실수를 빨리 인정하고 수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친구들과 카드놀이를 즐기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버핏의 일상은 평범하고 단순하다. 철저한 자기관리를 강조하는 대다수 리더들과 달리 버핏은 고령임에도 몸에 해로운 코카콜라와 감자튀김, 아이스크림, 맥도날드 햄버거를 즐긴다. 특별한 점은 90대 중반의 나이에도 매일 5~6시간을 책에 투자하는 독서광으로서 책을 통해 대부분의 통찰력을 얻는다는 것이다. 버핏의 개인 삶은 극도로 검소해서 오래된 작은 집에 살며 재산 대부분을 기부해 왔다.

저평가된 기업에 투자해 함께 잠재력을 실현시켜 나가는 버핏의 가치투자 원리는 기업가 정신의 핵심이다. 가치투자는 시장의 장기적 가능성을 믿고 미래에 투자하는 기업가 정신이다. 버핏은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큰 위기가 오더라도 진정으로 좋은 기업은 반드시 잠재력을 실현할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믿고 과감하게 투자한다. 이런 면에서 “대다수가 몰락하는 엄청난 위기 상황에서도 이를 돌파해 급성장할 소수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버핏의 선언은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한 한계봉착 위기에 빠진 현재 우리 기업 리더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진정한 기업가 정신이다.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