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명분도 실리도 없는 출마

입력 2025-04-28 00:38

한 권한대행 출마 현실화는
망가진 한국 보수의 자화상
정말 판단력 마비 때문인가

처음 들었을 때는 설마 했는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가 현실이 되는 모양이다. 피선거권이 있다면 누구든 선거 출마야 자유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이 직을 던지고 대선에 나선다는 얘기는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출마의 명분부터 여러 측면에서 무리수가 따르는데, 그 무리수를 상쇄할 만큼의 실리가 있을지 다소 의문이다. ‘50년 정통 관료’인 한 대행이 무슨 생각으로 대선 출마에 무게를 두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 대행을 대선판으로 기어이 끌어들이는 모습은 망가진 한국 보수정치의 자화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윤석열 전 대통령 실패 사례를 겪고도 기어이 당 밖의 ‘뉴 페이스’를 데려와 선거를 치르려는 고질병은 그대로다. 선거 직전 밖에서 데려온 사람을 내세워 유권자에게 표를 달라 하는 행태를 한 번도 아니고 반복적으로 하는 건 정당으로서 부끄러운 일 아닌가.

더 큰 문제는 수많은 외부 인사 가운데 ‘윤석열정부 2인자’였던 한 대행을 골라낸 책임의식과 정무 감각 부재다. 과거 보수가 ‘꽃가마’를 태우려 했거나 태웠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나 윤 전 대통령(당시 전 검찰총장)은 적어도 전임 보수정권과는 무관한 사람이었던 만큼 전 정권의 그늘로부터 자유롭기라도 했다. 하지만 한 대행은 윤석열정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탄핵의 강을 건너자”고 기껏 호소해 놓고 왜 다시 ‘윤석열 대 이재명’ 프레임으로 회귀하려 하는가.

더군다나 이번 대선은 윤 전 대통령이 무모한 비상계엄으로 파면되면서 치러지는 선거다. 한 대행은 비록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서 계엄 선포에 반대했다고는 하지만 끝내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막지 못했다.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겠지만 정치적 책임까지 부정할 수 없다. 그런 한 대행을 대선판에 불러내는 건 2023년 10월 국민의힘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선거 원인 제공자인 김태우 전 구청장을 공천한 일을 연상시킨다. 그에 앞서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 때도 서울 한복판에서 무려 159명이 숨지는 일이 벌어졌는데 내각과 여당 어디서도 정치적 책임을 지는 이는 나오지 않았다. 두 사건 모두 당시에는 윤 전 대통령의 문제라고 여겼는데 이제 보니 ‘정치적 책임 불감증’은 보수 전체의 문제였다.

한 대행 차출은 국민의힘이 그동안 더불어민주당의 ‘줄탄핵’을 비판했던 논리와도 상충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민주당의 국무위원 줄탄핵 때문에 정부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규탄했던 이들이 이제는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대한민국은 시스템 국가”라며 한 대행의 대권 도전을 부채질한다. 심지어 어떤 이는 “한 대행이 최종 후보가 안 되더라도 컨벤션 효과를 위해 나오는 게 좋다”고도 했다. 대통령 권한대행 자리가 대선판 불쏘시개 정도로 취급해도 될 하찮은 건가.

뭘 하든 이길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도 않은 실정이다. 최근 여러 여론조사상 한 대행 지지율은 기존 국민의힘 주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지 기반도 당내 다른 주자들과 겹치는 양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 대행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한들 과거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커녕 ‘윤석열·안철수 단일화’만큼의 감동이나 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반 전 총장이나 윤 전 대통령 등은 적어도 정치 참여 선언 이전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다른 주자를 압도하는 지지율을 보여주기라도 했지만 한 대행은 그런 적도 없다. 뒤늦게 팬카페를 만들고 ‘한덕수 띄우기’에 시동을 걸지만 그런 관제 바람이 얼마나 갈까.

이처럼 명분도, 실리도 부족한 ‘한덕수 카드’를 구태여 밀어붙이는 건 판단력이 마비됐거나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다. 벌써 국민의힘 내에선 한 대행 추대를 대선 이후 당권 문제와 연결짓는 해석들이 공공연히 들린다.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전리품부터 챙길 생각부터 하는 습성은 대통령 탄핵을 두 번 겪고도 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이종선 정치부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