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기 시작하기 전 지인들과 이런 약속을 해뒀다. 정말로 화창한 봄날이 얼마나 될지 세어보자고. 봄은 막연한 기대 속에선 당연히 화창하지만, 경험한 바에 따르면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이거나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 더 많았다. 화창한 봄날이 귀하다. 오늘로써 이미 다섯번째 화창한 봄날이 지나갔다. 그날에 내가 햇빛을 만끽하려면 할 일에 쫓기지 않기를 바라지만 인생은 그렇게까지 행운이 뒤따르지는 않아서, 시간을 쪼개 돗자리를 손에 들고 바깥으로 나간다. 저녁 일찍 돌아와 더 집중적으로 일을 하면 되겠지 하는 것이다.
돗자리를 챙겨 가까운 호수공원을 찾았다. 몇 년 전 오월에 우연히 가봤을 때 장미꽃이 만발해서였는지 유독 기억에 남아 있었다. 친구를 불러내어 걷다가 사람들이 옹기종기 간이 텐트를 쳐놓은 구역에 접어들었다. 우리도 돗자리를 펼쳤다. 비눗방울을 부는 아이, 배드민턴을 치는 엄마와 딸,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을 둘러보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내가 그리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이런 것이라고. 초록색 잔디밭에 사람들이 소풍을 나와 놀고 있는 모습. 이런 한가한 장면을 더 자주 보고 싶다고. 별다른 것을 하지 않고 그저 노는 모습.
인간의 생애에 대단한 노력과 대단한 성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모두에게 다 스며 있겠지만, 나는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에 대해 은밀하게 상상하고 염원한다. 어떨 땐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표방하기조차 한다. 획일화된 삶의 모토가 나를 억압하는 듯도 하므로 나로서는 일종의 저항인 셈이다. 열심히 일한 뒤에 얻은 휴식이라서 귀하게 누리는 토요일의 화창함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우리 사회는 노는 것마저 지나치게 열심이다. 노는 시간마저도 자랑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처럼 군다. 자랑조차 없는 휴식으로 하루를 보내고 내 피부에 묻은 햇살에 가벼운 기쁨을 챙기고 싶다.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