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강영애 (19) 야간무료진료센터 개원… 의료선교로 선한 영향력 전파

입력 2025-04-28 03:02
1975년 개원한 서울 서대문구의 무료야간진료소 치과 진료실에서 진료를 돕고 있는 강영애(붉은 원) 목사. 강 목사 제공

한국기독교청년회(YMCA)를 다녀온 이후 나는 다시 무료 야간진료소 설립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그런데 무료 야간진료소 건물 2층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이제까지 알던 이들이 아니었다. 낯선 사람들로 가득했다. 최태민이 이곳을 구국선교회 사무실로 쓸 당시다. 중앙정보부 관계자는 “어떤 상황을 봐도 모른 척하고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외부에 절대 알리지 말라”고 경고했다.

나는 개의치 않고 야간진료소 운영을 위한 모금을 위해 기업인을 찾아다니는 한편 봉사할 의사를 모집하기 위해 거의 매일 의사협회를 찾아가 설득했다.

“6·25전쟁을 겪고 나라가 어려웠던 시절, 여러분은 부모 덕, 나라 덕으로 의사라는 엘리트 자리에 오르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나라를 위해 헌신할 때입니다. 3년에 한 번, 단 하루 저녁도 봉사할 수 없으시겠습니까.”

나는 약 3000명의 의사가 4인 1조로, 3년에 한 번씩 순번제로 봉사하는 구조를 만들고자 했다. 그런 내게 서울시의사협회 회장 김영홍 박사가 뜻밖의 조건을 제안했다. 그는 “서울 여의도에 의사회관을 세우려고 하는데, 땅은 마련했지만 자금이 부족해 공사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 문제부터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이 사정을 전했고 결국 그들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서대문구 북아현동에 세워진 무료 야간진료소는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를 비롯해 병리검사실 X선실 수술실 그리고 20개 병상이 마련된 입원실을 갖췄다. 그리고 마침내 1975년 12월 10일 개원했다. 개원 첫날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경사도 있었다.

야간진료소를 총괄할 원장으로 당시 적십자병원에 근무하던 송모 박사를 초청했다. 진료소 의료진은 서울시의사회 소속 각 과의 권위 있는 전문의들로 꾸려져 매일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자원봉사를 이어갔다.

의사를 보조하는 간호사 역할은 전국 조직을 갖춘 여성 선교회원들이 맡았다. 이들은 두 명씩 한 조를 이뤄 진료를 도왔다. 여성 후원회에 소속된 영양 전문가들도 환자들에게 적절한 영양 관리를 제공하고자 세심히 배려했다.

무료 야간진료소에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영세민 가운데 대한구국선교단이 지정한 교회의 목사 추천을 받은 환자들과 해당 교회 관할 구역 내 동사무소나 파출소에서 교회에 의뢰한 추천 환자로 제한했다. 단순한 의료 지원을 넘어 교회를 통한 전도와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었다.

나는 매일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진료소에 상주하며 의사들과 여성 선교회원들을 돌보고, 간식을 챙기고 각 병실에 필요한 물품을 마련했다. 오전 6시가 지나 잠시 집에 들러 두세 시간 쉬고 나면 다시 진료소로 출근해 하루 일과를 이어갔다.

대한구국선교단은 북아현동 야간진료소에 이어 1976년 5월 부산에도 같은 센터를 개설했다. 같은 해 12월 10일엔 북아현동 진료소 개원 1주년을 맞아 한의과를 신설하고, 단체 명칭을 ‘대한구국봉사단’으로 변경했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