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강영애 (18) 구국선교단 총재 된 최태민, 부정 청탁 등 비리 일삼아

입력 2025-04-25 03:03
최태민(가운데)이 1975년 5월 제1기 구국십자군 군사훈련장에서 찍은 기념사진. 강 목사 제공

기독교계에서 영향력이 없던 최태민은 전면에 나설 수 있는 이가 아니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는지 1975년 4월 구국선교단의 총재가 됐다.

당시 근혜(박근혜 전 대통령)는 최태민과 현안을 자주 상의했다. 청와대 비서들이 여러 차례 우려를 전했지만, 그는 “왜 사람을 모함하느냐”며 불쾌해했다.

처음엔 총재는 최태민, 부총재와 단장 부단장 사무총장은 모두 기독교계 목사들이었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즈음 구국선교단이 구국십자군(십자군 총사령부)으로 개편되면서 조직과 인물이 교체됐다. 기존에 실질적 역할을 하던 기독교계 목사들은 조직표에서 사라지고 최태민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인물들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 연결고리엔 문제가 될 부정이 있었다. 최태민은 든든한 배경을 앞세워 사람들에게 부정청탁을 지시하면서 취업이나 공무원 승진 등을 약속했다. 한 번은 김모 목사가 큰 건을 성사시켰는데 이후 그것이 문제가 돼 남대문경찰서에 끌려갔다.

“강 목사님, 김 목사님이 지금 남대문경찰서에 잡혀가 취조 받고 있습니다.”

나는 다음 날 새벽 서울 종로구에 있는 최태민의 집을 찾아가 대문을 세차게 차며 “최태민 나와!” 라고 소리쳤다. 집에서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여고생이 나왔다. 바로 최순실이었다.

“네가 목사도 아니면서 목사한테 건수 물어오라고 시키더니 이제와서 불리하다고 상대를 부추겨 목사를 구속시키느냐.” 나는 당장 김 목사를 풀어주라고 윽박 질렀다. 결국 김 목사는 다음 날 석방됐다. 경찰서에서 나온 그는 “죄송하다”만 반복했다. 나는 단호히 말했다.

“최태민 말이라고 다 따르다니, 그게 목사 체면에 말이 됩니까. 이제 이곳에 나오지 마시고 교회 사역에만 전념하세요.”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박모 목사가 중앙정보부(중정)로 끌려갔다. 교회 부흥회에서 무심코 “내가 청와대에 갔는데…” 라고 언급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 뒤로 중정이 박 목사를 계속 따라 붙었던 것이다. 얼마 뒤 중정에서 연락이 와서 이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곧바로 최태민에게 달려갔다. “어디 감히. 박 목사님이 누군 줄 알고 이런 짓을 하느냐.”

하지만 믿었던 박 목사도 중정에서 곤욕을 겪은 뒤 결국 구국선교회를 떠났다. 이후 이런저런 이유로 떠나는 이들이 더 생겼고 그 빈자리는 낯선 사람들로 채워졌다.

김 목사와 박 목사 사건 이후 한국교회 7개 교단 대표들이 나를 한국기독교청년회(YMCA) 7층으로 불러냈다. 그들은 내게 따져 물었다.

“누가 최태민을 목사라 추켜 세웠습니까.” “왜 목사도 아닌 최태민을 목사라고 불렀습니까.” “그 사람이 어디서 안수를 받았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해 제가 책임질 일은 없습니다.”

나 역시 정확한 내막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래서 이단 연구소장 탁명환과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던 김종일에게 도움을 청했다. 두 사람은 내게 상황을 파악하는 데 큰 힘이 됐다. 탁명환은 최태민이 활동하기 전부터 그의 목사 자격과 이단성을 비판해온 인물이었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