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미국발 관세 리스크에도 1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인공지능(AI)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 수요가 꾸준한 데 따른 것이다. SK하이닉스는 6세대 HBM인 HBM4의 연내 양산 준비를 마무리해 조기 양산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 매출 17조6391억원, 영업이익 7조4405억원을 기록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번 실적은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던 지난해 4분기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성과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2% 늘었고, 영업이익은 158% 급증했다. AI 개발 경쟁과 재고 축적 수요 등이 맞물려 메모리 시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개선된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불확실성에도 메모리 수요는 당분간 굳건할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는 이날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관세 영향은 불투명하지만 일부 고객사에서는 수요를 앞당기는 움직임도 있다”며 “PC와 스마트폰 같은 IT 소비재는 당분간 관세 적용이 유예되며 AI 기능이 탑재된 신제품 출시 효과를 기대하고 있고, 최종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 인상 전에 구매를 서두를 가능성이 있어 오히려 교체 수요를 촉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실적 고공행진을 이끄는 HBM은 1년 전 공급 물량을 합의하는 제품 특성상 전년 대비 배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AI 서버가 소비재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세 영향이 제한적인 점도 HBM 수요를 뒷받침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관세가 부과되더라도 기업들이 갑자기 AI 투자를 줄이는 식으로 대응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AI 시장 선점을 위해 투자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시장 불확실성 대비 수요 변동성은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SK하이닉스는 “미국 고객향 매출 비중은 감사보고서에 있는 법인 소재지 기준 약 60%로 높은 상황이지만 관세 부과 기준은 미국 선적 물량에 적용된다”며 “실제 본사를 미국에 둔 고객이라고 해도 선적은 미국 외 지역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미국에 직접 수출되는 비중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2028년까지 HBM 수요가 연평균 50%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년 주력 제품이 될 HBM4는 연내 양산 준비를 마친다는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세계 최초로 HBM4 12단 제품 샘플을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에 제공했다.
SK하이닉스의 호실적은 삼성전자와 비교하면 더욱 뚜렷하다. 1분기 삼성전자 전체 사업부의 잠정 영업이익은 6조6000억원으로 SK하이닉스보다 8405억원 적었다. 지난해 4분기에 이어 2분기 연속으로 삼성전자 전체 사업부 영업이익을 넘어섰다. 삼성전자의 반도체(DS)부문 메모리 사업부의 영업이익은 3조원 초반 수준으로 추정되는데, SK하이닉스 영업이익의 절반에 못 미친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