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가왕’ 방불 공공주택계약 심사… 조달청이 이끈 변화

입력 2025-04-28 02:23
조달청 공공주택계약팀 직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들은 공정 투명 품질 신속이라는 네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조달청 제공

조달청이 지난해 4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공공주택 관련 업무를 이관받은 지 1년이 지났다. 조달청이 갖춘 계약의 전문성, 각종 심사 운영 경험은 새로이 업무를 담당하게 된 공공주택계약팀(공공주택팀)에게 큰 힘이 됐다. 덕분에 공정성과 투명성, 신속성이 향상됐다는 지표가 나오는 등 업무 이관이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 1년간 조달청은 공공주택의 공사·설계·건설사업관리(CM) 등 총 139건(3만6677세대)의 계약을 체결했다. 분야별로는 공사 58건, CM용역 59건, 설계용역 22건이었으며 계약 규모는 8조29억원에 달했다.

입찰공고부터 계약체결까지 걸린 기간은 기존 68.4일에서 62.2일로 6.2일이 줄었다. 하반기에 발주 물량이 집중됐음에도 신속한 평가위원 선정, 시스템을 활용한 심사 등을 통해 계약이 빠르게 진행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계약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객관적 방안이 마련됐다는 점이다.

우선 조달청은 LH·조달청 퇴직자가 소속된 업체에게는 입찰 단계에서 감점을 주는 초강수를 뒀다. 부실시공이 있을 경우에는 내용에 따라 감점을 주도록 조치했으며, 품질관리 평가 항목에 따라 점수를 더 주거나 감점을 주는 등 관련 지표를 개선했다.

계약 관련 심사 과정을 유튜브 생중계로 볼 수 있게 된 것은 그중에서도 백미다. 심사는 지난해 5월 정부대전청사 3동 1층에 별도로 마련한 ‘공공주택 심사마당’에서 진행된다. 2중 보안으로 잠겨진 심사실 내부는 평가위원과 청렴옴부즈만·모니터링단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 업체 관계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엄격하게 구분돼 있다.

평가위원들과 업체 관계자들이 심사 도중 접촉할 수 있는 여지는 원천 차단됐다. 업체 관계자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별도의 방송실에서 음성으로만 브리핑을 한다. 위원들이 잠시 화장실이라도 갈 경우 조달청 직원들이 화장실 앞까지 동행할 정도다. 일련의 과정은 CCTV를 통해 실시간으로 고스란히 송출된다.

이런 방식으로 공공주택 심사마당 유튜브 채널은 설계용역 20건, CM용역 59건 등 총 79건의 심사 과정을 공개했다. 강력한 조치 덕분인지 전관 업체가 계약한 사례는 지난 1년간 단 1건도 없었다.

1년만에 이처럼 대단한 성과를 거뒀음에도 조달청은 공공주택 업무의 품질을 더 높이고 더 공정하게 만들기 위한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올해 LH 공공주택 조달 규모는 약 8조원이었던 지난해보다 16% 증가한 9조3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정부의 신속 집행 기조에 따라 조달청은 물량의 59%인 5조5529억원을 상반기에 발주할 예정이다. 계약이 특정 시기에 집중돼 업무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LH와 계약 일정을 협의, 발주 물량이 집중되는 현상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국민들의 안전과 직결되는 공사의 품질 확보는 가장 중요한 과제다. 그래서 철근 누락 등 부실이 확인된 공사의 사업관리 실적은 평가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설계 과정·결과에 대한 사후 평가를 통해 설계공모 심사에서 우수한 품질을 확보한 설계자에게는 가점을, 부실 설계자에게는 감점을 부과한다. 심사위원의 정성평가 배점도 줄여 로비를 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

업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됐다. ‘중소기업 확인서’의 유효기간이 조만간 만료되는 업체가 확인서 갱신기간을 놓쳐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심사기준일을 입찰공고일에서 심사신청마감일로 연장한다. 입찰 공고서의 내용을 더 명확하게 표기해 입찰자의 혼선도줄이기로 했다.

조달청 공공주택계약팀장을 맡은 윤일주 과장은 “공공주택 계약 업무는 조달청이 다른 기관의 업무를 위임받은 첫 사례다. 말하자면 시험대”라며 “지난 1년은 규정과 절차 등 큰 틀을 정비하는 기간이었다. 올해는 업무에 디테일을 더해 완전히 정착시키겠다”고 말했다.

200명 하던 일을 16명이… 팀워크로 뭉친 공공주택팀
원활한 주택공급 위해 주야로 분투

조달청이 거둔 놀라운 성과의 배경에는 공공주택팀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공공 공사 관련 업무는 보통 조달청 내 2개 과가 나눠서 처리하지만, 공공주택 관련 업무는 오로지 공공주택팀 1곳에서만 소화한다.

공공주택 업무를 과거 LH가 담당할 때에는 7개 부서 200명이 넘는 직원이 각 업무를 나눠 맡았다고 한다. 조달청으로 업무가 이관되면서 공공주택팀 직원 16명이 그 모든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일당백이 불가피한 구조였던 셈이다.

적은 인력임에도 1년을 성공적으로 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뛰어난 팀워크 덕분이었다. 각 부서에서 가장 일 잘하는 '정예요원'들을 공공주택팀원으로 선발했고, 이들의 능력이 상승효과를 일으키면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김애나 사무관은 "팀원들이 조달청의 베스트 멤버가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며 "인력이 너무 적어 힘들긴 했지만 직원들끼리 서로 힘든 곳을 지원하고, 자기 업무가 아니어도 함께 처리하면서 더욱 끈끈해졌다"고 말했다.

공사의 규모가 클 수록 품은 더 많이 들어간다. 200억원 이상 규모의 공사를 심의할 경우 심의위원만 13명인데 위원들을 섭외하는 일, 심사실 청소 및 심사 업체 접수, 심사 진행 등 전 과정을 모두 팀원들이 도맡아 한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심사가 종료되면 직원들은 밤이 다 돼서야 겨우 개인 업무를 시작한다. 문서를 확인하는 정량평가가 공공주택팀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읽어야 하는 정량평가서는 일반 A3용지의 3묶음 수준인 700~800페이지에 달한다. 평가서의 수가 곧 업체의 수인 만큼 계약이 몰리는 시즌에는 사무실이 서류로 가득 찬다. 휴가도 가지 못할 정도로 바쁘다보니 점심시간 체력운동은 필수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 지 모를 정도지만, 이들은 더 좋은 품질의 공공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일을 할 힘을 얻는다. 원종현 서기관은 "팀원들이 '모든 사안을 제대로 처리하겠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 '몇건만 하고 말지'라는 생각이 없다"며 "공공주택 문제는 국민들에게 매우 중요한 사안이기에 사람이 중요하다. 정부의 주택공급 계획에 맞춰 공급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대전=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