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난민캠프서 무료 치과 진료… 꿈·희망 싹틔운다

입력 2025-04-25 03:01
강지헌(왼쪽 두 번째) 선교사가 23일(현지시간) 말라위 잘레카 난민캠프에 마련된 임시 치과진료소 앞에서 팀원들과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아프리카 말라위 수도 릴롱궤에서 북쪽으로 41㎞ 떨어진 도와 지구에는 대규모 난민촌이 있다. ‘잘레카(Dzaleka) 난민캠프’이다. 캠프에는 대량 학살과 내전을 피해 콩고민주공화국(62%) 부룬디(19%) 르완다(7%) 등지에서 온 5만2000여명의 난민과 망명 신청자가 살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이 캠프에 임시 치과진료소가 문을 열었다. 무료 진료를 한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16.5㎡(5평) 남짓한 단칸 건물 진료소에는 한국 치과에서 볼 법한 최신식 전동의자가 놓여 있었다.

치과진료소를 운영하는 강지헌(65) 선교사는 “한국에서 공수한 최신 기계”라며 “인근 도립병원에도 이 정도 수준의 기계는 찾기 힘들 것”이라고 귀띔했다.

강 선교사의 진료 현장에는 말라위대학교 보건대학의 치의과 학부생 이삭 루크 줄리오(25)씨와 노엘 카수페(24)씨 그리고 강 선교사가 운영 중인 에파타치과진료소 직원 도린 음비리카(29)씨가 동행했다.

강 선교사는 제자들이 직접 환자를 볼 기회를 주고자 간단한 진료는 맡긴 채 곁에서 틈틈이 조언을 건넸다.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을 뒤로하고 캠프의 난민을 돕고 있는 예수전도단(YWAM) 관계자와 함께 캠프를 둘러봤다. 캠프는 단순히 난민 수용소라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마을 공동체였다. 판잣집 형태의 각종 상점이 군데군데 들어서 있었고, 너른 공터에서는 난민들이 제각기 흙바닥 위에 천을 깔고는 토마토 카사바 등 식료품을 팔고 있었다. 캠프 밖에선 경제 활동을 할 수 없기에 근근이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캠프 내에서 뭐라도 구해 팔아보려는 것이다.

천막 아래 수백명이 줄을 지어 서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YWAM 관계자는 “배급을 기다리는 이들”이라며 “매달 난민에게는 1인당 1만5000콰차(1만원)씩 나온다”고 설명했다. 한 달을 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23일(현지시간) 난민들이 캠프 안에서 좌판을 벌이며 먹을거리를 파는 모습.

말라위는 아프리카에서도 경제 여건이 좋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 기준 2024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81달러에 불과하다. 6·25전쟁 직후 폐허였던 1954년 대한민국의 1인당 GDP를 2024년 가치로 환산하면 527달러 정도니 이보다도 낮은 셈이다. 난민 캠프에 머무는 이들은 말라위 주민들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 노출돼 있다. 캠프는 원래 최대 1만2000명을 수용하도록 설계됐는데, 난민이 계속 늘어 지금은 5만명 넘는 사람이 수용돼 있다. 과밀화 문제가 대두된다.

헨리 랄리(33) 잘레카보건소장은 “가장 큰 어려움은 물과 식량”이라며 “배급량은 한계가 있는데 난민은 계속 늘어나니 분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이어 “음식을 두고 다투는 경우도 많고, 배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아이들이 더러운 물과 그로 인한 말라리아 질병에 노출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랄리 소장은 “강 선교사님이 처음 이곳에 오셨을 때는 건물은커녕 제대로 된 진료시설도 없었는데 이렇게 치과진료소가 생겨 캠프 내 난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강 선교사는 “지속 가능한 자립을 위해서라도 난민캠프 인근 도립병원의 ‘테라피스트’(간단한 치과 진료가 가능한 치료사)들이 정기적으로 이곳에 와 진료할 수 있도록 캠프 측과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난민 캠프가 들어선 부지는 과거 정치범 수용소로 사용된 곳이다. 캠프 이름인 ‘잘레카’는 말라위 공용어인 치체와어 ‘은잘레카’에서 유래했는데 ‘다시는 그런 짓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숨겨진 뜻과 달리 이날 캠프에서는 새로운 희망이 싹트고 있었다.

진료가 끝나고 만난 카수페씨는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치아 문제로 고통이 심했음에도 제대로 된 치료를 못 받고 증상이 더 심해지는 걸 본 후로 치과의사를 꿈꾸게 됐다”며 “강 교수님의 난민캠프 무료 진료 이야기에 큰 감명을 받고 봉사에 기꺼이 동참했는데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교수님으로부터 늘 돈이 아닌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진료에 임하라고 배웠다”며 “앞으로 강 교수님처럼 치과 진료에 대한 접근성이 낮은 말라위 사람들을 찾아가며 양질의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잘레카(말라위)=글·사진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