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숲은 힘이 세다. 푹신한 이끼가 융단처럼 깔리기 시작했고, 어린나무들도 부단히 새잎을 밀어낸다. 서울 안산자락길을 따라가다가 인적이 드문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겨우내 습설과 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진 소나무도 여럿 보였다. 허리를 곧게 펴고, 폐가 신선한 공기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깊은숨을 쉬었다. 그렇게 걷다가 우뚝 멈추게 되었다. 비탈에 거대한 느티나무가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뿌리만 해도 내 키를 훌쩍 넘어설 정도였고, 둘레도 족히 두 아름은 넘어 보였다. 나무를 자세히 보려고 홀린 듯 비탈로 내려갔다.
우듬지 쪽에 나무껍질이 갈라졌고, 불에 탄 것처럼 검게 그을려 있었다. 벼락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늘을 쪼개는 번개, 그 강력한 압력이 나무의 척추를 관통하는 순간을 상상해 본다. 번쩍, 하고 황금빛 번개가 내리꽂히고, 천둥소리는 몇 초 뒤 들렸을 것이다. 그러니까 빛과 소리의 시차 사이에서, 나무는 자신의 내부를 통과한 종결음을 들은 셈이다. 그 순간을 상상해 보니 찬란하고 무서웠다. 왜인지 벼락 맞은 나무 곁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무의 마지막 순간을 목도하기라도 한 듯 숙연한 마음마저 들었다.
나무는 얼마나 오래 살았던 걸까. 땅거미가 내리면 나무 그늘은 더 짙어졌겠지. 뿌리 부근에서 자라는 버섯은 갓을 넓히며 포자를 바람에 실려 보냈을 것이다. 고요한 숲의 정적을 흔들어 깨우기라도 할 듯이 새가 높고 맑은소리로 츠피이, 하고 운다. 쪼개진 나뭇가지 틈으로 작은 벌레가 부지런히 기어간다. 소멸이 완전한 종결은 아니라는 듯, 죽음에서 삶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아이러니가 여기 있다는 듯이. 나무는 상처와 회복의 경험을, 쇠락과 성장의 의미를 질문하는 나에게 은유로 답하지 않고 온몸으로 응답했다. 나는 검은 나뭇가지에 손을 얹고 짧게 기도를 올렸다. 축축한 껍질에서 탄내가 났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