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성취를 반복하면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 당연한 일상의 법칙이겠건만, 우리는 보이지도 않는 목표를 세워두고 지레 지쳐 포기할 때가 많다.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아이에게도 그런 경험이 필요한 순간이 왔다. 조바심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한국 엄마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몇 주 전 아이의 영어 학원을 끊었다. “나는 친구들보다 단어도 모르고, 문법도 약하다”고 아이가 자주 푸념했다. 지난 겨울방학에 시작한 학원 적응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 부적응은 아이에게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절망감을 안겼던 것 같다.
학원 시험 단어를 외우면서 울먹거린 적도 있었다. ‘미리 외우면 될 텐데’라는 잔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참았다. 틀릴까봐 불안해하면서 달달 외운다고 그게 머리에 남을까 싶었다. ‘혼자 해보고 싶다’는 아이의 바람을 마지못해 들어주며 그 경험이 아이에게 작은 성공의 기쁨을 주길 바랐다. 몇 개월 가지 않아 분명 다시 학원에 가라고 채근할 것 같은 예감이 들지만, 그래도 작은 목표를 향해 내디딘 발걸음이 쌓일 거라고 확신한다.
최근 기사를 쓰면서 작지만 귀하며 용감한 시도를 한 이들을 연달아 다룰 기회가 있었다. 처음이 어렵지만 일단 해 본 사람들, 누군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들의 작은 성취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많은 이들이 댓글로 그 성공의 기쁨을 함께 축하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70대 할아버지의 영남지역 화재 기부금 20만원이 그랬다. 도움을 받아야 겨우 살아갈 수 있는 어르신은 자신의 한 달 식비나 다름없는 20만원을 영남지역 산불 이재민들에게 써달라며 기꺼이 내놓았다. 올해 초 암 진단을 받은 어르신은 당시 수술비가 없어 전전긍긍했었다. 절망에 빠진 그는 이웃의 도움으로 무사히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의 형편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병원비가 더 들 수 있다. 그러나 어르신은 “적은 돈이지만 제가 받은 희망을 그분들께 다시 전하는 데 보태고 싶다”며 기부했다.
한국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어렵사리 적응해 사는 다문화 학생과 이주 근로자도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작은 것을 나누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도움을 받는 것에 익숙한 학생들이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도울 차례’라면서 평소 지원 기관에 산불 모금을 제안했다. 평일에 쉬는 것은 엄두를 낼 수 없는 외국인 노동자도 학생의 마음에 힘을 보탰다. 그렇게 작은 손길들이 모여 260만원을 만들어냈다.
미국 미시간주 작은 마을 주민들은 1만권에 달하는 동네 책방 장서를 차도 없이 두 손으로 옮겼다. 동네 책방 이사 소식에 이웃들은 봉사자를 자처했고 예전 장소에서 새 공간을 잇는 길에서 인간 컨베이어벨트가 됐다. 자신이 선 자리에서 두 손을 내밀어 옆사람에게 책을 건네는 일이 전부였다. 책을 상자에 담는 데만 2~3일 걸릴 뻔했던 서점 이사는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끝났다. 봉사에 참여한 많은 이들은 자신의 두 손이 이사를 성공시킬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이런 작은 행동과 그 성취가 앞으로 그들의 인생에서 어떤 큰 역할을 할지 상상해본다. 학원 숙제보다 훨씬 적은 분량이지만, 자신이 목표한 영단어를 외우는 경험은 살면서 만나는 태산처럼 커다란 과제 앞에서 ‘그중 하나는 해보자’는 동력을 주진 않을까. 시골에서 가장 저렴한 월세를 찾아 홀로 살던 그 어르신이 한 달 밥값을 누군가를 위해 양보했던 선한 행동은 ‘나도 참 괜찮은 사람이지’라는 자긍심을 가져다주지 싶다.
얼굴색이 달라, 한국어가 서툴러서 한국이 어색했던 다문화 학생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눈물 흘리는 한국인을 위해 모금을 시작한 그 용감한 시도는 앞으로 살면서 주저앉고 포기하고 싶을 때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든든한 힘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그들은 한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모든 것을 만들어냈던 사람들이었으니까.
신은정 미션탐사부 차장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