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생수병 반입 제한 재활용 손목밴드…
지구를 사랑하자는 친환경 콘서트
지구를 사랑하자는 친환경 콘서트
한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그래서 너는 언제 가냐?”는 인사를 나눴다. 질문을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거의 “밥은 먹었냐?” 수준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가는 게 당연한 대상은 정해져 있었다. 밴드 콜드플레이의 내한 공연.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생활 반경 탓이기도 하겠지만, 2주에 걸쳐 6회, 총 30여만 명 규모의 공연을 열다 보니 아는 사람이 갈 확률이 높은 것도 사실이었다.
2010년대 중반만 해도 공연계에는 ‘이제 콜드플레이만 오면 다 오는 거’라는 말이 돌았다. 내한 공연 끝판왕 취급을 받은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96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된 이 4인조 얼터너티브 록 밴드는 21세기 현역으로 활동하는 밴드 가운데 현재로서는 전 세계 스타디움 규모의 투어를 돌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세대가 되었다. 힙합과 전자음악에 빼앗긴 승기는 다시 록 음악으로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콜드플레이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승승장구했다. 특히 공연 분야에 있어서 그랬다. 데뷔곡 ‘Yellow’(옐로)나 이제는 우렁찬 떼창 없이 들으면 어딘가 허전한 ‘Viva La Vida’(비바 라 비다)를 비롯한 수많은 히트곡이 있었고, 보컬 크리스 마틴의 트인 성대와 뛰어난 쇼맨십, 오래 호흡을 맞춘 멤버들을 비롯한 스태프들과의 찰떡 호흡도 늘 호평이었다.
역시 대형 공연으로 유명한 밴드 U2의 뒤를 잇는 공연계의 보장된 블루칩이 될 거라는 핑크빛 미래도 잠시, 이들은 2019년 세계 투어를 잠정 중단했다. 이유는 뜻밖에도 환경 문제였다. 앨범 하나를 내고 1~2년간 전 세계를 도는 게 기본이었던 이들은 자신들이 지금껏 음악을 알리고 사람들과 즐겨온 방식이 환경 오염과 직결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세계 투어를 위해서는 밴드 멤버뿐만이 아닌 무대 및 조명 장비, 숙련된 스태프까지 모두가 비행기로 이동해야 한다. 이 외에도 수만 명이 모이는 대형 공연을 위해 필요한 전기량, 배출되는 일회용 쓰레기 등 공연이란 그곳에 모인 사람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의 마법인 동시에 자연에는 부담일 수밖에 없는 행사였다. 인간이 지구에서 행하는 대부분이 그렇듯이 말이다.
콜드플레이가 한국을 찾은 건 2017년 공연 이후 8년 만이었다. 즉, 공연 중단 선언 이후 처음이었다는 말이다. 덕분에 이들의 공연은 그때와 같으면서도 그때와 달랐다. 우선 입장 시 일회용 생수병 반입이 제한되었다. 대신 별도 지참한 텀블러나 다회용 용기에 물을 받을 수 있는 워터스테이션이 공연장 내 설치되었다. 관객 입장 시 무료 배포되는 LED 손목밴드 ‘자이로 밴드’는 식물성 생분해 소재인 건 물론 퇴장 시 반드시 반납해 재활용하게 되어 있었다. 공연 전 공연장에 위치한 대형 스크린에 국가별 밴드 회수율이 거듭 등장했다. 관객들의 반납 의지를 자극하고자 하는 연출이었다면, 적어도 한국에서는 대성공이었다고 멤버들에게 직접 알려주고 싶다. 실제로 공연 첫날 지금까지 최고 수치인 97%를 기록한 일본 반납률을 보고 ‘이건 일종의 한일전’이라는 밈이 SNS를 통해 퍼지며 다음 공연인 4월 18일, 한국 관객들은 반납률 98%라는 기적의 수치를 끝내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환경운동을 일종의 놀이와 유희로 만드는 데는 공연장 내부에 위치한 각종 시설도 한몫했다. 관객이 뛸 때 발생하는 진동으로 전기를 만드는 ‘키네틱 플로어’와 페달을 밟아 전력을 만들어내는 ‘파워 바이크’가 대표적이었다. 밴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공연장을 찾은 관객과 함께 음악으로 공유하는 ‘공연’의 기본 개념을 확장한 흥미롭고 매력적인 시도였다. 그리고 이 모두를 실현할 수 있게 만든 건 어쩐지 7년 전보다 성대와 팀플레이가 더 짱짱해져 돌아온 것 같은 크리스 마틴과 콜드플레이였다. 공연의 마지막,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스크린에 뜬 ‘Believe in love’(빌리브 인 러브)라는 메시지가 비단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만은 아니란 걸 온몸으로 느꼈다. 나를 사랑하는 건 결국 내가 사는 이곳을 사랑하는 것.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사랑과 책임으로 무겁게 가벼웠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