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알고리즘이 만든 최초의 계엄”

입력 2025-04-25 00:37

“이번 계엄은 알고리즘이 일으킨 최초의 계엄령일지 모른다.”

‘증권계 미래학자’로 불렸던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해 지난해 12월 10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홍 최고위원은 이 글에서 윤 전 대통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가장 먼저 점령하려던 점을 근거로 “이번 계엄령은 윤석열과 친위세력들이 극우 알고리즘에 중독돼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금도 22대 총선 부정선거 가능성과 ‘야당의 폭주’가 비상계엄의 이유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치권에서는 그가 극우 집단의 유튜브 방송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끊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재임기간 중 윤 전 대통령의 유튜브 사랑이 종종 밖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합리적인 추론일 수 있다. 실제 극우 유튜버들이 취임식에 초대됐고, 지난 1월 체포 직전엔 관저를 찾아온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윤 전 대통령이 “레거시 미디어는 너무 편향돼 있다. 유튜브에서 잘 정리된 정보를 보라”고 권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진짜 이유는 역사가 밝혀주겠지만, 이쯤 되면 나라의 지도자가 유튜브 알고리즘에 빠져 있는 일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국민적 합의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대선의 8부 능선을 넘어서고 있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를 바라보는 마음도 그리 편치 않다. 민주당 관계자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이 후보의 유튜브 사랑도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후보 본인이 구독자가 126만명에 이르는 ‘이재명TV’의 주인장이고, 정치의 주요 국면에서 유튜브를 적극 활용해 왔다. 지난해 비상계엄 당시에는 국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가장 먼저 통화한 사람이 유튜버 김어준씨와 이동형씨라고 한다. 이 후보는 지난 2월 계엄 이후 첫 국내 인터뷰로 김어준씨의 유튜브 방송에 나와 “제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오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우리 총수님에게 전화한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후보가 유튜브라는 매체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다.

어쩌다 대통령의 유튜브 사랑을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이쯤 되면 현실성 없는 우려는 아닐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듣고 싶은 것만 골라주는 알고리즘이 유튜브를 출시 20년 만에 전 세계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애플리케이션으로 만들어준 비결 아니었던가. 그런 의미에서 만약 이 후보가 이번 대선 레이스의 결승점을 1등으로 통과한다면 재임 동안만이라도 유튜브 계정을 삭제하거나 정지시켜주기를 권하고 싶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없이 바로 국정 사령탑에 올라야 하는데, 대통령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본다면 실패는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유튜브라는 매체가 갖는 즉시성과 확산성이라는 장점,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공평한 매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최적의 알고리즘’으로 사용자를 유혹하는 유튜브가 아니어도 국민 의견을 청취하고, 국민과 소통할 방법은 많다. 만약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찾아야 한다. 국가 지도자라면 적어도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나. 제발 ‘나는 다를 것이다’라고 자신하지 않길 바란다. 홍 최고위원은 페이스북 글 말미에 “알고리즘이 만든 유사한 상황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사회의 리더 그룹이 알고리즘에 휘둘리면 우리의 미래는 포퓰리즘 기반의 정글이 된다. 여하튼 깨어 있어야 한다. 마음의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한다”고 적었다. 이 후보 자신이 직접 임명한 최고위원의 조언을 가슴에 잘 새겼으면 한다.

최승욱 정치부 차장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