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이재명 후보의 공약과 본심 사이

입력 2025-04-25 00:39

이재명의 압도적 경선 우위
산토끼 잡으려 우클릭 심혈

부동산·AI 공약과 언행 괴리
여전히 진정성에 의구심 높아

집권시 견제 없는 막강 정권
감춰둔 본심 드러낼까 걱정

대선 경선에 돌입한 ‘절대 1강’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발걸음이 가뿐하다. 두 차례 순회경선에서 이 후보의 누적 득표율은 89.56%. 아무리 권리당원 대상의 투표라지만 민주주의 선거에서 보기 힘든 초현실적 수치다. 26~27일 마지막 경선, 역선택 방지 조항에 따른 국민 여론조사 결과도 뻔할 듯 싶다.

이제 관건은 산토끼 잡기인데 이 역시 순조롭다. 베이지색 니트 옷차림, 부드러운 설명조 목소리로 단편 영화를 연상케 한 출마 동영상은 중도층에도 안정감을 심어줬다는 평이다. 이 후보에 대한 독설로 유명한 장예찬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영상 잘 만들었더라. 약점을 잘 커버했다”고 할 정도다. 이 후보의 중도층 대상 지지율은 최근 40%로 국민의힘 후보 전체(19%, 한국갤럽)보다 2배 이상 높다.

이미지 개선 다음 노림수는 공약이 주는 신뢰감일 터. ‘분배 마니아’ 이 후보는 지금 ‘성장 전도사’로 변신했다. 기본 소득, 국토 보유세 등 기존 레퍼토리는 꺼내지도 않는다. 대선 1호 공약이 ‘인공지능(AI) 100조원 투자’다. 싱크탱크 ‘성장과 통합’이 우클릭을 지원한다. 유종일 ‘성장과 통합’ 공동대표는 문재인정부 부동산 정책은 정부가 무리하게 개입해 화를 불렀다고 비판했다. 주 52시간 규제에 대해 기업의 완화 요구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온 “(정부가) 시장원리를 억누르겠다는 건 계엄과 다를 바 없다”는 표현은 놀라움 그 자체다.

중도·우파까지 아우른 이 후보의 공약에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왠지 목에 가시 하나 걸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공약과 본심 사이의 괴리감을 너무 자주 봐와서다. 과세 및 정부 개입 위주의 부동산 정책을 지양하겠다는 약속의 이면을 보자. 지난해 12월 25일 민주당 의원 6명 등 야당 의원 10명이 계약갱신권을 무제한 쓰도록 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여론의 비판에 민주당 의원들이 급히 법안을 철회했다. 하지만 석 달 뒤 민주당의 ‘20대 민생의제 발표회’에선 세입자에게 최장 10년간(현재 4년) 주거권을 보장하자는 제안이 담겼다. 이 후보 대응은 한결같다. 논란이 생기면 “내 생각과 다르다”고 선을 긋는 식이다. 당내 일부 의원의 일탈일까, 이 후보 본심이 들킨 걸까.

1호 공약 목표는 AI 기본사회다. 그런데 AI 기본사회의 기초 작업이라 할 AI 교과서조차 민주당은 반대한다. 이 후보는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장을 확보해 AI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기엔 안정적 전력 공급이 필수인데 이를 막는 당의 ‘탈원전 정책’을 어떻게 할지는 별말이 없다. 최근 원전특별법 제정안이 발의 6개월만에 법안소위에 상정됐지만 민주당의 소극적 태도로 의결조차 안됐다. 선거 캠프에선 주 52시간제 완화 필요성을 내비치는데 당은 주 52시간 완화 조항을 뺀 ‘반도체 특별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렸다.

선거 전후 정치인의 변심이 어제오늘 일이겠냐만 괜시리 걱정이 커지는 건 이 후보 집권 후에 펼쳐질 권력 지형 때문이다. 행정부 접수와 거여 국회가 동반돼 법 통과는 일사천리다. 집권 1년차 범여권 의석수만 볼 땐 이명박정권(185석)이 지금과 엇비슷하다. 하지만 당시엔 여당내 야당 박근혜 의원 세력이 있었다. 반면, 이 후보에겐 당내 견제 세력이 전무하다시피 한다. 사법부 인사,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2명 임명까지 거치면 취임 직후부터 입법·사법·행정을 사실상 틀어쥔다. 민주화시대 이후 역대급 슈퍼파워 정권의 등장이다.

뒤가 없는 단임제 하에서 정책 추진에 걸림돌이 없을 때 표심용 공약이 눈에 들어올까. 대통령 거부권에 막혔던 노란봉투법·기본시리즈 등 본심을 표출할 기회를 놓치고 싶을까. 대통령이 된 뒤 소신을 펼치는 걸 뭐라 할 순 없다. 문제는 그동안 비친 이 후보의 본심엔 퍼주기, 노조 편향, 기업 옥죄기가 똬리를 틀어 왔다는 점이다. 규제 완화, 노동생산성 강화, 혁신 정책을 바탕으로 4차산업 혁명 전쟁에 뛰어드는 글로벌 흐름과는 결이 다르다.

지도자가 본심 아닌 공약을 의식하게 하려면 정권의 균형감각, 외부의 견제가 있어야 한다. 이재명 일극 체제에 길들여진 민주당, 탄핵의 강에서 허우적대며 시대정신을 상실한 국민의힘에 이를 기대하는 게 가능할까 싶다. 슈퍼맨의 공약과 본심 사이에서 자칫 국민만 맘졸이는 상황이 올까 걱정이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