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시국에 아우구스티누스란 우물을 맛볼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이 책은 아우구스티누스를 매개로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분의 은총이란 수원(水源)으로 향하도록 우리를 초청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전공자인 저자는 그간 축적한 교부 연구를 녹여내 오늘을 위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모습을 그려냈다. ‘고백록’과 ‘신국론’ 등 저작과 편지, 설교를 활용해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이처럼 명료하게 정리했다니 놀라울 뿐이다.
독자들은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걷는 순례자로서 그가 목회자로서 어떤 삶을 살았으며 고민이 무엇이었는지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다. 그가 힘을 얻고 의지한 은혜의 수단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서 위로도 얻을 수 있다.
책을 보며 인상 깊게 본 몇 가지 주제를 나누고 싶다. 먼저 ‘순례자의 노래’(5장)에서 시편과 찬송가를 언급한 것이다. 저자는 초기 교회에서 시편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또 이를 어떻게 기도하고 노래했는지 알려준다. 특히 원수를 갚아달라는 기도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이 새롭다. 우리 역시 시편 기자처럼 억울함과 분노의 기도를 쏟아놓을 수 있다. 그리스도가 자신의 기도로 이를 하나님께 올리기 때문이다.
‘기적’(13장)에 대한 논의도 흥미롭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초기엔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신국론’에선 20개 이상의 기적 사례를 열거한다. 이러한 입장 선회의 이유는 무엇일까. 기적은 신자가 그리스도와 자신의 부활을 믿는 믿음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들’(20장) 속 아우구스티누스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은퇴 후 별세 전까지 그는 세 가지 일에 집중했다. 후임자를 세우고 기존 저작의 오류를 바로잡으며 참회 시편으로 기도하면서 죽음을 준비한 일이다.
에필로그에서 독자는 아우구스티누스가 혼혈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접한다. 그의 창조성은 두 문화 사이에 낀 이중적 정체성에서 비롯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번역한 수입 신학으로는 영적 필요를 채울 수 없고 스스로 물을 길어 마셔야 한다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저자는 한국인으로서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우물을 팠다. 책은 앞으로 우리 정서로 신학의 우물을 길어낸 본보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