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경영체제’ 롯데그룹, 연공서열 위주 인사제도 바꾼다

입력 2025-04-24 00:24

롯데그룹은 업무 중요도와 전문성에 따라 임금을 다르게 책정하는 인사제도 개편안을 추진하고 있다. 성과를 내는 임직원이 더 많은 연봉을 받도록 바꾸는 게 골자다. 계열사 실적이 부진해 경영상 어려움이 커지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쇄신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각 계열사 임직원들의 내부 반발이다. 다수의 임직원을 납득시킬 만한 타당한 기준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지주는 업무 효율을 높이고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새 직무 기반 인사 제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23일 밝혔다. 현재 롯데그룹은 연차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연공서열에 기반한 연봉제를 운용하는 중이다.

하지만 새로 추진되는 임금제도는 연차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직무·업무의 중요도, 성과 평가 등에 따라 개인이 받는 임금이 달라진다. 이미 도입한 계열사도 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대홍기획·롯데이노베이트는 새 임금제도를 도입했다. 롯데백화점·롯데웰푸드 등은 올해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롯데그룹의 새 임금 시스템은 직무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업무 중요성과 대체 가능성, 업무 강도 등을 삼았다. 입사 시기와 무관하게 ‘레벨 1~5’ 다섯 단계로 직무를 정하는 방식이다. 핵심 직무는 레벨5로, 비핵심 직무를 레벨1로 분류했다고 한다. 레벨5에 속한 직군은 가장 낮은 레벨 직군보다 기본급부터 더 많이 받게 된다. 레벨이 낮은 직군에서도 성과를 내면 성과급을 통해 연봉 차이를 만회할 수 있도록 보완했다.

문제는 핵심 직무를 어떤 방법으로 구분하느냐다. 수치로 담기 어려운 정성 지표의 경우 업무 역량이나 기여도를 가늠할 명확한 기준을 세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직무 중심으로 인사 제도를 손보면 개인이 받는 돈의 액수가 달라지는 만큼 기업들은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롯데그룹 내부에선 찬반 여론이 팽팽하다. 찬성하는 쪽은 보수적인 조직 문화를 바꾸고 실력 중심의 변화를 통해 새 성장동력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하는 측은 불필요한 분란이 생길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인사 기준에 객관성과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직원들의 사기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단 지적이다.

실제로 임직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면 제도 안착은 어렵다. 근로기준법 94조에 따르면 기업이 취업규칙을 변경할 땐 노동조합의 의견을 들어야 하고, 노조가 없는 사업장은 근로자 과반수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때도 과반수 노조 구성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인사제도 개편안을 두고 “롯데그룹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비상경영체제에 들어선 이후 자산 매각에 속도를 낼 정도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 경영진이 기존 인사 제도를 생산성 저해 요소 중 하나로 판단한 것”이라며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인건비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