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의대생들에게 의대 교육과정을 수립하는 전문가 기구인 ‘의학교육위원회(의교위)’ 참여를 제안했지만 아직 별다른 호응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가 의대생들의 강의실 복귀를 위해 공들인 유인책이지만 의대생들은 시큰둥한 모습이다. 강경파 의대생은 교육부를 대화 상대로도 여기지 않는 상황이어서 이달 말 대규모 유급 사태가 현실화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23일 의학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가 전날 의대생들에게 참여를 제안한 의교위는 교육부 내에 설치하는 의대 교육전문가 기구다. 2+4년제(예과·본과)에서 통합 6년 과정으로 바뀌는 의대 교육과정뿐만 아니라 의대 교육에 필요한 인프라 확충 등 전문가와 현장 목소리를 의사 양성 프로그램에 반영하기 위해 추진됐다. 의학교육 전문가와 병원·지방자치단체 관계자 등으로 구성되는 전문가 단체지만 피교육자인 의대생도 참여해 의견을 낼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것이다.
의대생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는 그간 보건·의료 정책 논의에 의대생을 포함시켜 달라고 요구해 왔다. 교육부가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제도적으로 창구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전날 의대생 11명과 사직 전공의 2명을 만나 의교위 참여를 제안하면서 “정부와 의료계 간 진정성 있는 소통이 부족했다. 의학교육 발전을 위한 (의대생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의대생들도 교육 행정, 임상 실습, 의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의대생들 사이에선 “너무 늦은 조치다” “수업에 복귀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 등 회의적인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강경파 의대생들은 필수의료패키지 전면 백지화와 의료개혁특별위원회 해체 등 윤석열정부가 추진한 의료 개혁을 전면 백지화해야 수업에 복귀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무엇보다 의교위 참여가 유력한 의대협이 교육부를 대화 상대로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다. 의대협은 정부의 공식적인 대화 요청에도 일절 응답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부가 지난 17일 2026학년도 ‘증원 0명’을 확정 발표하면서 교육부로부터 더 이상 얻을 게 없다고 판단한 분위기다. 정부를 상대로 ‘버티면 이긴다’를 경험한 의대생들이 대선 국면과 차기 정부 출범 때까지 의·정 갈등 상황을 끌고 가서 협상력을 키우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규모 유급 문제는 차기 정부와 협상하겠다는 태도로 읽힌다.
한 의대 교수는 “의사국가시험이 합격률만 93~94%에 달할 만큼 면허 취득이 쉽다 보니 ‘의대생이 곧 의사’인 줄 아는 오만한 등식이 나오는 것”이라면서 “전문가도 아닌 의대생들이 의교위에 들어가더라도 얘기할 수 있는 건 ‘의대 정원을 줄여라’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