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혁명 속 보편관세 10% 상수일 듯… 공급망 다중화 필수”

입력 2025-04-25 02:11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최근 서울 강남구 트레이드타워에서 가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관세 정책은 세계 교역 질서에 도전을 제기한 것이라며 우리 정부도 협상의 지렛대를 결집해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현규 기자

“1930년 스무트-홀리법 이후 100여년 만에 최대 폭의 관세 인상을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단행한 겁니다. 가히 혁명적 수준입니다. 파문은 수년간 이어질 것입니다.”

장상식(57)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상 정책은 극단적 보호무역주의의 상징과도 같다며 ‘혁명’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은 세계 교역 질서에 근본적인 도전을 제기한 것으로 미국뿐 아니라 세계에 유례없는 충격을 안겼다는 판단이다. 최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트레이드타워 48층 ‘베이징룸’에서 국민일보와 만난 장 원장은 “미국 시장을 포기할지, 미국에 추가 투자를 할지, 생산지를 어떻게 이전할지 모든 선택지가 비용과 위험을 수반해 국내 기업이 전략 수립에 큰 혼란을 겪고 있다”며 나침반 없는 항해를 하는 형국이라고 밝혔다. 기업은 ‘메이드 포 아메리카(Made for America)’ 체제로의 전환을 고려하고 정부는 향후 2개월여 협상의 골든타임 동안 대(對)미국 무역적자를 해소할 만한 구체적이고 실행력 있는 카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게 장 원장의 견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를 한마디로 정의해달라.

“‘미국 우선, 동맹국도 예외는 없다’로 요약할 만하다. 전 세계가 추구한 자유무역의 근간을 훼손하는 조치를 연일 내놓고 있다.”

-트럼프 1기와 2기 정책 강도를 1~10으로 표현한다면.

“1기가 3~4 정도라면 2기는 9 수준이다. 충성심을 철저히 검증한 내각을 등용해 속전속결 체제로 전환했다. 모든 수입품에 부과한 10% 보편관세는 앞으로 사라지지 않고 기본으로 깔고 갈 것으로 예상한다. 재정수입에 관한 니즈가 컸던 것 같다.”

-관세 폭탄으로 인한 득과 실이 있을 텐데.

“연간 5500억 달러(약 784조원) 정도의 관세 수입이 예상된다. 철강과 알루미늄, 자동차 등 미국 내 제조 기반이 약화한 산업의 재건도 이뤄질 것이다. 관세를 이용해 다른 나라의 무역장벽을 낮추고 미국 제품의 시장 접근성을 높이는 전략적 효과를 노린 셈이다. 하지만 중국과 불붙은 관세 전쟁은 무역 전쟁의 악순환이다. 고급 아이폰 가격이 최대 2300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처럼 관세 부과로 수입품 가격이 오르면 최종 부담은 소비자가 지게 된다. 해외 공급망에 의존하는 산업군의 경우 원자재와 부품 비용 증가로 생산 여건이 더 나빠질 것이다. 관세가 협상의 지렛대가 아닌 경기 침체를 촉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우리 업종별 영향은 어떤가.


“대미 1위 수출 품목인 자동차와 자동차부품에 25% 관세를 매기면서 수출 악영향이 가장 클 전망이다. 현대차·기아의 미국 내 판매에서 현지 생산 비중은 25%로 경쟁사 대비 낮은 편이다. 특히 자동차부품은 중소기업이 대부분인데 대미 의존도가 높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국내 생산 물량이 많은 반면 미국 내 생산기지는 적어 관세 부담을 직접 떠안는 구조다. 유일하게 기상도가 ‘맑음’인 산업은 조선이다.”

-한국 기업은 어떤 애로를 호소하고 있나.

“중소기업 이익률은 평균 2.6%에 불과하다. 관세 인상분을 수출 업체가 부담할 때는 손실이 불가피하다. 미국에 공장을 이전하려고 해도 생산 설비 이전에 또 관세가 붙어 경영난을 키운다. 또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한국 기업이 ‘차이나+1’ 전략에 따라 베트남, 아세안, 인도 등 제삼국으로 생산 기지를 다변화했는데 이들 국가에 고관세를 부과하면서 생산 기지 이전 효과도 누리기 힘든 상황이다.”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미국용, 기타국용 제품을 따로 만들어야 할 형편이다. 미·중 갈등은 더 심해지고 공급망은 점점 블록화, 진영화 될 것이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생존을 위해 공급망을 이중화, 다중화할 필요성이 커지는 것이다.”

-정부가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협상에서 레버리지로 쓸 카드가 있나.

“액화천연가스(LNG), 원유, 방산, 반도체 장비, 농축산물 등 대미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미국산 수입 확대 시간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미국 내 낙후한 조선업의 구조적 문제와 경쟁력 약화를 보완하기 위해 미국 정부·기업과 합작해 ‘한·미 공동 스마트 조선소’를 설립하는 방안도 매력적일 것 같다. ‘불평하지 말고 전략적으로 행동하라(Don’t whine, strategize)’는 신조 아래 서로 다른 분야의 레버리지를 결집해 미국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관세 다음’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농산물, 원산지 규정 등 자국 이익에 들어맞도록 기존의 무역협정을 재조정할 가능성이 크다. 또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경쟁 기술 유출을 막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출 통제 제도를 강화하는 쪽으로 재정비할 것이다. 공공에 이어 민간에까지 미국산 부품 조달 비중 확대를 시도할 수도 있다.”

-미·중 갈등은 확전 양상이다.

“둘은 군사력, 경제, 기술, 이념 등 여러 분야에서 기존 강대국과 신흥 강대국 사이 다차원적 패권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 개념처럼 기술 패권, 금융 규제, 외교 압박, 군사 대응 등의 영역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인데.

“중요한 건 밸런싱이다. 안보는 미국과 굳건한 동맹을 기반으로 하되, 경제 분야에서는 중국과의 관계를 무조건 차단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모두와 다른 언어로 소통해야 한다. 대안 시장을 확대하고 다자간 협정에 참여하는 것도 방법이다. 소재 다변화와 2차 공급선 확보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

김혜원 기자 ki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