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기존보다 강화된 전기차용 배터리 안전 규정을 공개하며 리튬인산철(LFP)·나트륨이온 배터리에 주력하는 자국 기업을 우회적으로 지원하고 나섰다. 한국 정부도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의 주력 제품인 삼원계(NCM) 배터리를 중심으로 지원 제도를 짜고 있다. 하지만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산 LFP가 세계 시장뿐 아니라 한국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확대하는 흐름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최근 내년 7월부터 시행할 배터리 안전 관련 국가표준을 발표했다. 최근 증가한 전기차 판매량 및 관련 안전사고 증가세를 고려해 지난 2020년 발표된 안전 표준을 업데이트한 것이다. 열 폭주, 외부 충격, 초급속 충·발전 등 상황에서의 화재 안전성에 대해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겠다고 선언했다. 예를 들어 열 폭주 이후 배터리팩에서 5분 동안 불이 나지 않아야 한다는 기존 기준을 2시간 동안 불이 나지 않아야 하는 것으로 바꾸는 식이다.
이번 개정엔 한국산 NCM을 배척하고 중국이 잘하는 LFP를 밀어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LFP에는 NCM에 포함된 니켈, 코발트 등 광물이 들어가지 않아 전기화학적으로 NCM과 비교해 화재의 근본 요인이 적다. 업계 관계자는 23일 “중국 정부가 발표한 새 안전 규정은 NCM 기술로는 달성이 거의 불가능하다”며 “NCM보다 화재 안전성이 뛰어난 LFP로도 충족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중국 배터리 시장에서 LFP가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달한다.
이번 안전 규정 개정이 자국 최대 배터리 기업이 시장 선점에 힘쓰고 있는 나트륨이온 배터리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시각도 있다. 전날 CATL은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한 ‘테크데이’ 행사에서 2세대 나트륨이온 배터리 ‘낙스트라’의 상용화 준비가 완료됐고, 하반기 중으로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나트륨이온 배터리는 LFP보다도 전기화학적 안정성이 높아 화재 위험이 더 적다.
한국은 중국과 반대로 NCM 위주의 정책을 운용 중이다. 낮은 에너지밀도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LFP 배터리에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보고 있다. 한국에서는 배터리 셀 3사의 주력 제품인 NCM 배터리가 약 80%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비공식 지원사격을 등에 업은 중국산 LFP는 보조금을 받은 한국산보다 높은 가격 경쟁력을 자랑한다. 중국산 LFP가 한국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는 배경이다. 한국 내 전기버스 과반이 중국산 LFP를 탑재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올해부터는 중국 2위 배터리 기업인 BYD의 전기차도 한국에 상륙했고, 중국 상해공장에서 만든 저가형 테슬라는 지난해 한국에서 3만대 넘게 팔렸다. 모두 중국산 LFP 탑재 차량이다. 김필수 한국전기자동차협회 회장은 “정부가 LFP의 재활용성이 떨어진다는 점에 주목해 국내 LFP 제조사 및 판매사에 환경 부담금을 부과하는 등 추가 조처를 통해 국내 NCM 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