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학자·민주당원서 반세계화 극우로… 나바로의 변신

입력 2025-04-24 02:12
지난 2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를 지켜보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 AFP연합뉴스

피터 나바로(75) 미국 백악관 고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책사’로 통한다. 정식 직책이 무역·제조업 담당 대통령 고문이지만 미국 정계와 경제계에 알려진 나바로의 별명은 ‘무역 무용론자’다. 감당할 수 없는 관세를 상대국에 부과해 국제 교역 없이 미국 경제를 자립시켜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지금은 반세계화와 보호무역주의를 찬양하는 극우 포퓰리스트지만 나바로는 20대부터 50대까지 민주당원이자 환경운동가, 진보주의 이론가였다”고 보도했다.

플로리다주 중하층 노동자 부모 아래서 자란 나바로는 명문 사립 터프츠대 경제학과를 장학생으로 졸업했고 하버드대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이 시절 그는 후진국에 대한 경제 원조가 절실하다며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을 찾아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했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어바인 캠퍼스(UC어바인)의 경제학 교수로 임용된 나바로는 1996년 민주당 전당대회 연단에 올라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재선을 역설했다.

그랬던 그의 진보 성향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미국 제조업의 몰락 때문이었다. 미국 자동차공업의 성지 디트로이트, 철강·제련공업의 중심 오하이오주 등 이른바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에서 제조업 일자리가 한꺼번에 사라지자 그 원인을 중국과 글로벌 무역 체제에서 찾은 것이다.

나바로는 2004년 민주당원증을 반납하고 공화당원으로 변신했다. 그때부터 미국이 세계 각국과 자유무역협정(FT A)을 맺는 것에 강력히 반대했으며 특히 중국을 가장 큰 적으로 꼽았다. 그는 여러 저서를 통해 중국 중심의 세계화가 미국 제조업 일자리 수백만개를 파괴했다며 세계화를 막지 않는 한 미국 경제의 회복은 없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한 뒤 이 같은 나바로의 주장에 공감했고, 그를 국가무역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대통령의 총애를 받던 나바로는 2020년 대선 직후 범법자로 기소돼 수감되는 수난을 겪었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 폭동을 배후 조종했다는 혐의였다.

트럼프 재집권으로 사면을 받은 그는 백악관 고문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면서 무역 상대국에 대한 고율관세 부과를 주도해 왔다. NYT는 “최근 트럼프가 중국을 제외한 교역국들에 대한 상호관세를 유예하면서 힘이 빠졌지만 나바로는 언제든 다시 부상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