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과 해일 등의 천재지변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꼭 나오는 말이 있다. “무고한 이들이 고통받는 지금, 하나님은 뭘 하고 있는가.” 극한 상황에서 절대자의 책임을 따져 묻는 건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무신론자인 영국 소설가 존 파울즈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뒤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매우 화가 났다”고 당시 감정을 술회했다.
인류를 우연히 생겨난 존재로 믿으면서 결백한 이들의 고통과 죽음에 의분을 품는 건 모순이다. 우주를 주관하는 절대자가 있고, 그가 세운 질서가 기본적으로 질서 있고 선하다는 걸 전제할 때 인간의 분노는 비로소 정당할 것이다.
스리랑카 출신 성공회 평신도 신학자인 저자는 신학과 역사, 과학의 관점에서 인간이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고통과 죽음을 파고든다. 영국 런던대서 원자력 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국제복음주의학생회(IFES)와 영국 패러데이 과학종교연구소, 기독교 환경보호단체 아로샤 국제본부 등에서 활동한 그는 생태계 전체가 겪는 고통과 악의 연관성에 관해서도 심도 있게 고찰한다.
‘악은 교훈을 위한 하나님의 수단’이라는, 기존의 신정론(神正論)을 반복하는 책은 아니다. 2018년 암으로 아내를 잃은 저자는 “구세주가 세상을 바로 세우기 전까지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필연적 고통을 논한다. 고통의 때,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자신의 고통에 무관심한 절대자의 부재에 낙심하기 마련이다. 저자는 이들에게 “탄식하며 정직하게 자신의 고통에 대해 목소리를 낼 것”을 당부한다. 그러면서 “그 탄식을 자신의 정체성 일부로 삼으라”고 조언한다. 시편 저자와 욥, 예수도 고통의 순간엔 찬양이 아닌 의심과 항의, 분노의 언어로 하나님과 소통했기 때문이다.
고대 이스라엘과 초대교회 찬송가인 시편은 3분의 1 이상이 탄식의 기도다. 욥은 “고통당하는 인류를 대표해 하나님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듯” 그분과 대화했다. 예수 역시 십자가에서 시편을 인용해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는지” 따지듯 기도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의 탄식을 무시하는 종교적 세계관이 오히려 신성모독이라고 표현한 이유다.
이런 가운데 저자가 희망을 찾은 대상은 “인간의 약함과 고난에 연대하는 방식으로 일하는 하나님”이다. ‘인간을 위한 절대자’가 된 하나님은 십자가 수난으로 고통과 악이 자신에게 닥치도록 허락했다. 하지만 이에 압도되지 않고 부활로 인류의 새 지평을 열었다.
영미권이 아닌 제3국 신학자의 시각으로 세계 각지의 분쟁과 환경파괴를 신학적으로 조명하는 시각도 이채롭다. ‘자연재해는 하나님의 심판’이라거나 ‘생태계의 약육강식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았다’ 등의 자의적 성경 해석도 바로잡는다. 그는 지난해 발생 20주기를 맞은 인도양 쓰나미에 대한 입장도 밝힌다.
“많은 이들이 ‘2004년 12월 26일 아침,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지’ 질문했다. 이에 나는 겸허하면서도 담대하게 대답할 수 있다. ‘희생자의 고통과 공포 속에, 생존자의 슬픔 속에,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 건 사람들의 영웅적 행동 속에, 가난한 사람의 취약성에 분노한 이들의 항의 속에, 남아시아 해안을 휩쓴 파도만큼 멈출 수 없던 세계적인 인간애의 자발적인 물결 속에 자기희생적 사랑의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셨다’고.”
한국어판 책 제목은 “오직 고통당하는 하나님만이 우리를 도울 수 있다”는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말에서 따왔다. 세상과 유리된 신은 인간을 도울 수도, 사랑할 수도 없다는 의미다. IFES서 만나 깊이 친분을 맺어온 김종호 한국기독학생회(IVF) 전 대표가 책을 번역하고 서문을 쓴 것도 의미 깊다. 김 전 대표도 저자처럼 아내를 잃는 아픔을 최근 겪었다. “극심한 고통으로 나는 타인의 고통에 눈을 떴다. 그리고 고통엔 연대하는 힘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는 역자의 진솔한 고백이 마음을 울린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