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산에 오르려면

입력 2025-04-24 00:32

등산을 즐겨 하진 않는다. 해야 할 때만 가끔 한다. 어쩌다 서울 근교 산은 거의 다 가봤다. 지리산 종주를 시도하기도 했다. 뱀사골에서 노고단을 거쳐 천왕봉으로 가다가 어느 산장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 날 폭우를 만나 이정표도 없는 길로 하산했다. 저녁 무렵 마음씨 좋은 할머니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밤새 산속을 헤맸을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기꺼이 방을 내줬고, 내려가는 길도 알려줬다. 지리산은 웅장했고 포근했다. 한라산도 가봤다. 낑깡 몇 개 들고 백록담에 가득한 물을 보고 내려왔다. 무작정 올라갔기에 어느 길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높더라, 고도에 따라 나무가 바뀌더라는 막연한 기억만 있을 뿐이다.

어느 해 겨울에는 설악산에 가기도 했다. 원래 바다를 보려고 떠난 길이었다. 가는 내내 눈이 와 버스에 탄 채 대관령 휴게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강릉으로 걸어 내려갔다. 그래서 목적지가 바뀌었다. 눈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는 나뭇가지 소리를 들으며 케이블카 매표소에 갔다가 배낭도 없이 운동화에 간이 아이젠을 묶고 정강이까지 쌓인 눈을 밟으며 금강굴까지 갔다. 금강굴 철계단도 눈에 묻혀 마지막 부분만 보였다. 아이젠만 믿고 무모하게 기어올랐다. 굴 안에 앉아서 설악산이 설악산인 이유를 제대로 느꼈다. 다음에는 산 밑에서 설경만 감상하기로 마음먹었다.

뭔 바람이 불었는지 3년 전 설악산에 다시 갔다. 백담사 길을 선택했다. 셔틀버스에서 내린 등산인들은 빠르게 산속으로 사라졌다. 힘들면 되돌아오기로 한 터라 앞선 이들을 따라잡지 않기로 했다. 전날 비가 많이 와 계곡물 소리는 지축을 울렸다. 물소리가 잦아들면 새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걸으니 산이 눈에 들어왔다. 몇 개의 높은 계단을 지나며 체력은 떨어져 갔다. 마침내, 해탈고개 중간에 주저앉고 말았다. 한참 후 고개를 들어보니 절경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겨우 봉정암 간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많은 사람이 산을 찾는다. 쉼을 얻기 위해, 자신과 마주하기 위해, 정상에 오르기 위해…. 이유는 다양하다. 산에 갔다고 반드시 꼭대기에 올라서야 하는 건 아니다. 누구와 어떻게 오르느냐도 중요하다. 길잡이는 꼭 필요하다. 한라산 여정이 기억나지 않는 이유는 길잡이와 동반자 없이 급하게 백록담을 ‘찍고’ 왔기 때문이다. 지리산 등반을 이끌었던 사람은 편한 길을 택했지만 날씨라는 변수에 대응하지 못했다. 지도도 없이 모르는 길을 하산길로 택했다. 겨울 설악산으로 끌고 갔던 형은 일행을 위해 아이젠을 사 왔고 눈을 느끼기에 충분할 만큼 갈 수 있을 정도만 인도했다. 그러나 추락을 대비해 서로 밧줄로 연결(안자일렌)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후에 간 설악산에서 무리하게 속도를 냈다면 쌍용폭포조차 보지 못하고 내려왔을 뻔했다.

좋은 산행 길잡이는 일행의 걸음 속도를 조절하고, 위험 지점을 피하며, 멀리 돌아가더라도 안전을 생각한다. 늘 ‘함께’를 염두에 두고, 낙오자를 끝까지 챙긴다. 긴박한 상황에선 자신을 희생할 각오도 한다. 국가도 갈 수 없는 꼭대기를 향한, 순탄할 수 없는 산행을 늘 한다. 이미 뒷걸음질을 경험하기도 했다. 길잡이와 그 조력자들이 자신만을 위한 길을 선택한 결과였다. 경험이 무색하게 다시 추락 중이다. 이번 길잡이 무리는 그 수를 알 수 없고 무게도 만만찮아 안자일렌 된 우리를 낭떠러지로 끌어당기고 있다. 모두를 위해 밧줄을 끊지 못할망정 혼자만 떨어지진 않겠다며 발버둥 치고 있다.

쉽게 오를 수 있는 정상은 없다. 다만 좋은 길잡이를 만나면 힘든 길도 편해진다. 길잡이 선택은 내 몫이다. 새 길잡이와 함께 다른 산을 오를 차례다.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jw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