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한 언론에 ‘폭우 속 폐지 줍는 노인’의 딱한 모습이 보도돼 소셜미디어를 달군 적이 있다. 사진 속 노인은 초기 치매를 앓고 있었고 하루 전 집을 나가 실종 신고됐던 사연이 알려졌다. 딸 지인의 신고로 노인은 무사히 가족 품에 돌아갔다. 그런데 노인의 가족은 인터뷰에서 “이웃들이 집에 치매 노인이 있다며 꺼림칙하게 여길까 두렵다”며 걱정했다. 아버지를 찾은 기쁨보다 가족 중에 치매 환자가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질까 더 겁났던 것이다. 치매 환자를 둔 가족이라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심정이지 않을까. 이처럼 많은 이들이 치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부정적 인식 탓에 치매라는 질환을 꺼리고 무작정 숨기려고만 하다가 병을 키운다.
치매에 대한 사회적 낙인에는 부정적이고 비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병명도 한몫한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치매를 구성하는 두 한자어는 모두 ‘어리석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병명은 질병의 본질을 잘 드러내야 함과 동시에 편견과 차별을 부르지 않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치매라는 명칭이 환자와 가족에게 수치심과 거부감을 주고 조기 진단과 치료를 방해해 변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같은 한자 문화권인 대만은 2001년부터 치매를 ‘실지증(失知症)’, 일본은 2004년부터 ‘인지증(認知症)’, 중국은 2012년부터 ‘뇌퇴화증(腦退化症)’으로 순화해 쓰고 있다.
한국도 2023년 초 보건복지부가 주도해 관련 기관·단체 인사들로 치매용어개정협의체를 구성하고 중립적인 대체 용어 찾기에 나섰다. 기존에 간질을 뇌전증으로, 정신분열병을 조현병으로 변경한 사례가 있어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3년째인 지금까지도 용어 개정에 별다른 진척이 없다. 21대 국회에서는 치매를 인지저하증, 인지증, 인지이상증, 신경인지장애 등으로 바꾸는 법안 7개가 발의됐으나 모두 입법에 실패했다. 왜 그랬을까. 치매학회 등 의료계가 의학 용어 변경에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몇 차례 협의체 논의를 거쳐 인지저하증이나 인지병으로 변경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반면 의료계는 병명 개정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치매 질환이 워낙 다양하고 복잡해 섣불리 할 수 없다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전두엽 치매, 알코올성 치매, 혈관성 치매 등 범위가 방대한데 일률적으로 인지저하증, 인지병으로 단정지을 경우 의료 현장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백번 양보해 중앙치매센터, 치매안심병원 등 행정 용어를 바꾸는 데는 동의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행정 용어만 변경하고 의학 용어로 치매를 그대로 쓰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실제로 의료계에서 치매를 진단명으로 계속 쓴다면 일상생활에서 용어를 바꾸긴 쉽지 않을 것 같다. 의료계와 복지부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상황에 의·정 갈등 사태가 길어지면서 협의체 운영은 거의 중단된 상태다.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에 이미 접어든 상황에서 치매 인구가 급증할 것은 자명하다. 이에 치매에 대한 편견과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조기 진단·치료에 도움이 되려면 병명 개정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22대 국회에서도 최근까지 4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되는 등 병명 개정 노력이 다시 이어지고 있는 점은 반갑다. 다만 지금까지처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실효적인 논의와 성과를 위해선 세밀한 작업이 선행될 필요가 있겠다. 정부는 행정 용어 변경에 따르는 비용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의료계는 의학 용어 변경에 따르는 문제점이 구체적으로 뭔지, 대안은 없는지를 연구해 공론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치매 병명을 바꿔 사용 중인 일본이나 대만, 중국 등은 의학 용어에 바뀐 명칭을 어떤 식으로 적용하고 있는지도 살펴보면 혜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