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트럼프, 수렁에 빠졌다

입력 2025-04-24 00:32

美 기업·소비자 피해 부르는
무차별 전면 관세
미국 머리 위에 폭탄 터뜨린 꼴

전시체제로 관세 갈등 준비한
중국이 갈수록 유리
달러 패권 지위까지 흔들려

美 신뢰 추락에 협상도 험난
한국도 서두를 필요 없다
관세·안보 연계, 동맹에 해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관세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 왔다. 일생일대의 숙원이 ‘관세의 전면적 도입’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닌 사람이다. 그런데 자신의 뜻대로 관세를 매겨도 되는 무대가 열리니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가 관세라는 정책 수단의 특질이나 누구에게 귀착되는지 등 관세의 기본도 파악하지 못한 정황이 줄줄이 드러나고 있다.

관세는 수입하는 상품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외국 기업(수출 업체)이 세금을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품을 수입하는 기업이 관세를 낸다. 그렇지만 수입 업체는 늘어나는 관세를 판매가격에 전가할 가능성이 커 최종적으로 관세를 내는 것은 국내 소비자들이다. 물론 수출 업체도 수요 감소에 따른 타격을 받지만 실질적인 필요와 욕구에 따라 해당 상품을 구매해 온 국내 소비자가 가격 급등을 감내해야 하는 최대 피해자다. 국제경제학 교과서에도 나오는 원칙이다.

트럼프는 지난 2일(현지시간) 100개 이상의 국가에 천문학적 규모의 무차별 관세 폭탄을 투하했다. 누가 뭐라 해도 ‘관세는 외국 기업이 내는 것’이라는 트럼프의 오만과 독선이 없었다면 이같이 무모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중국에 대한 대응을 보면 트럼프 진영의 무지는 확연하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미국은 중국에 수출하는 것보다 다섯 배나 더 많이 수입한다. (중국이) 질 수밖에 없는 패를 든 것”이라고 했다. 즉 수입을 많이 하고 무역적자를 보는 미국이 관세전쟁에서 유리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애덤 포센 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장,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교수 등에 따르면 이는 완전한 오판이다. 관세전쟁이 벌어지면 무역흑자국인 중국이 타격을 입는 것은 결국 돈이다. 판매가 줄면 지출을 줄이거나 그간의 저축을 인출해 견딜 수 있다. 다른 국가로 상품 판매처를 바꿀 수 있다. 피해를 입은 수출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도 가능하다. 하지만 미국이 잃는 것은 절실하게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다. 미국에서 생산할 경우 가격 경쟁력이 없거나 생산 능력이 없어 포기한 것들이다. 이를 대체하려면 오랜 시간과 큰 비용이 든다. 실제 중국산 수입품 상당 부분은 소비재가 아니라 산업에 필수적인 부품·소재다. 이를 대체하긴 어렵다. 포센 소장은 “최소한 트럼프 정부가 중국에서 수입하는 필수 산업투입재를 대체할 시간은 벌었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산업 공급망에 대한 이해도 없이 대형 사고를 쳤다는 얘기다.

전면적 관세전쟁을 계획했으면서 중국에 대해 무지하다는 점도 분명해지고 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중국은 ‘전시 때 마음가짐’으로 관세전쟁에 대비해 왔다. 미국산 곡물·육류 수입 중단에 대비해 브라질·아르헨티나산 수입 계획도 일찌감치 짜놓았다. 중국이 13일 첨단산업에 필수적인 희토류의 미국 수출을 중단한 것도 준비된 시나리오다. 시진핑 주석에겐 미국의 관세 도발이 정치적 호재다. 미국이라는 외부의 적에 대한 분노로 중국인이 똘똘 뭉치기 시작했다. 선거를 치를 필요가 없는 시 주석은 느긋한 반면 내년 중간선거가 있는 트럼프는 다급하다. 시간은 중국 편일 가능성이 높다.

관세 혼란이 금융시장으로 파급될 가능성을 트럼프가 염두에 두지 못한 것도 황당한 일이다. 트럼프의 갈팡질팡 관세 정책,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 대한 공격으로 미국에 대한 신뢰는 추락했다.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위기에 봉착했다. 미국이 폭탄을 자기 머리 위에서 터뜨렸다는 얘기가 과장이 아니다.

이런 상황은 한국에 어떤 의미가 있나. 우선, 관세 협상에서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22일 “대중국 협상 시 관세율이 매우 내려갈 것”이라며 유화 제스처를 취한 것은 그만큼 미국이 다급하다는 얘기다. 협상을 빨리 끝내는 쪽이 가장 유리할 것이라는 베선트 장관의 얘기도 같은 맥락이다. 협상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무시, 앞뒤 맞지도 않는 계산법으로 25% 관세율을 못 박은 미국의 부당성을 따져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서두를 경우 언제라도 말을 바꿀 수 있음을 여러 차례 증명한 트럼프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

관세 협상을 주한미군 방위비 등 안보 문제와 연계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앞으로 양국 간 경제 갈등이 있을 때마다 한·미 동맹 체제까지 흔들리는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다.

배병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