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된 대부흥운동은 단지 종교적 사건에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의 문턱에 선 조선 민족에게 한 줄기 빛을 비춘 민족사적 사건이었다.
부흥회에서 하나님을 만난 기독교인들은 개인의 죄를 깨닫고 회개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결단에 이르렀다. 부흥운동이 민족운동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당시 조선을 지배하던 사회진화론과의 결합이 일어났다. 부흥과 진화의 만남, 위험한 동거의 시작이었다.
사회진화론은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을 인간 사회에 적용한 사상이다. 허버트 스펜서를 비롯한 사상가들은 생물 세계의 경쟁과 적자생존 원리를 문명사회에까지 확장했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시작돼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로 발전했는데 강한 민족이 약한 민족을 지배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라고 봤다. 이 사상은 개인과 민족을 끊임없는 경쟁 속에 놓고 발전과 생존을 능력으로만 평가하는 냉엄한 세계관을 제시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회진화론을 활용했고 약소국 지식인들은 생존을 위한 자강의 논리로 이를 수용했다.
조선의 지식인들 역시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조선에 이 사상이 소개된 것은 량치차오(梁啓超)의 ‘음빙실문집’을 통해서였고 신채호와 박은식 등의 역사학자는 이를 바탕으로 민족주의 역사관을 전개했다. 그들은 강한 정신과 실력을 갖춘 민족만이 살아남을 수 있으며 민족정신이 쇠퇴하면 망국의 길을 걷게 된다고 봤다. 이순신 장군은 시대의 위기 속에서 정신의 도태를 막아낸 ‘적자(適者)’의 상징이었다. 안창호, 윤치호, 이상재 등 당시의 민족운동가들도 열등성을 극복하고 문명화된 민족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회진화론의 이념을 적극 수용했다.
1907년 부흥운동을 통해 민족 현실에 눈을 뜬 기독교인들은 당대의 시대정신이던 사회진화론과 마주하게 된다.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봉건적 구습을 벗고 개화를 이루며 동시에 일제의 침탈에 맞서는 것이었다. 기독교가 영적 동력을 제공했다면 사회진화론은 민족 발전의 이념을 제공한 셈이다.
이 결합은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며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했다. 그들이 만난 역사적 지점은 바로 3·1운동이었다. 이후 실력양성론에 기초한 민족 기업 육성, 물산장려운동, 청년 운동, 여성 해방, 농촌 계몽, 기독교 학교 운동 등이 활발히 전개됐다. 한국교회는 단지 영혼을 구원하는 기관을 넘어 민족의 정체성과 미래를 고민하는 실천적 공동체로 자리 잡게 됐다. 이 흐름이 1920~30년대 민족운동의 주류가 되면서 교회는 반봉건·반외세 운동의 선두주자로 대중의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부흥과 진화의 동거는 시간이 흐르며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사회진화론은 본질적으로 무신론적이며 경쟁과 효율을 중심에 둔 사상이다. 약자는 도태돼야 한다는 냉혹한 논리는 기독교가 강조하는 은혜, 자비, 약자에 대한 연민과 본질적으로 충돌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민족 생존을 위한 정신적 각성의 도구로 기능했지만 해방 이후 특히 산업화 시대를 지나며 그 한계와 문제점이 분명히 드러났다.
첫째 교회의 세속화와 타락을 부추기는 요인이 됐다. 가난하던 시절에는 부흥운동과 사회진화론이 근면과 절제를 강조하며 경제적 성장을 견인했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를 이룬 이후에도 같은 신앙 논리가 지속되면서 성공주의 신앙이 확산됐다. 자본주의적 성취가 신앙의 척도로 오해됐고 가난과 질병, 실패는 불신앙의 증거로 낙인찍혔다. 경쟁 중심의 경제 논리와 교회의 부흥 담론이 뒤섞이며 ‘부흥’이 ‘성장’과 동일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작은 교회 목회자는 근거 없는 열패감에 시달려야 한다.
둘째 한국 사회 전반에 끼친 악영향이 컸다. 산업화 과정에서 사회진화론은 자유시장경제의 이념적 기반이 됐고 시대를 읽는 기업가 정신과 경쟁의지가 경제발전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성공한 사람은 곧 신의 축복을 받은 적자로 인식됐고 실패자는 불성실하고 무능한 존재로 간주됐다. ‘가난은 자기 책임’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며 약자에 대한 공감은 사라지고 엘리트주의와 승자 독식 문화가 뿌리내렸다. 민중을 ‘개돼지’로 여기는 왜곡된 지도자 의식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사실 이런 흐름은 미국 복음주의 진영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20세기 초중반 미국에서 유행한 긍정적 사고방식, 자기계발 열풍, 번영신학은 경쟁 사회에서의 성공과 신앙적 축복을 동일시했다. 복음은 성공의 동력이 됐고 시장경제의 경쟁 논리와 기독교 신앙이 구조적으로 융합됐다.
부흥과 진화론의 만남, 분명 한 시대를 깨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다음세대에는 경쟁과 우월의 논리를 교회 안에 심고 사회 전체를 정글처럼 변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제 우리는 부흥을 다시 물어야 한다. 진정한 부흥은 영혼을 흔들어 깨우고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들며 새로운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