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진 기자의 사모 몰랐수다] 하나님이 맺어준 특별한 ‘조립식 가족’

입력 2025-04-26 03:06
배우 황인엽 정채연 배현성(왼쪽부터)이 출연한 넷플릭스 드라마 ‘조립식 가족’은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서로의 상처와 결핍을 보듬으며 살아가는 이들이 진정한 가족을 이뤄가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넷플릭스 제공

요즘 넷플릭스 드라마 ‘조립식 가족’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지난해 연말 화제가 됐던 작품인데 최근 들어 뒤늦게 ‘입덕’했다. ‘조립식 가족’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통해 대안적 가족의 형태를 보여주는 휴먼 드라마다.

저마다 상처를 안고 있는 드라마 속 인물들은 한 식탁에 둘러앉아 따뜻한 밥을 나누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면서 정서적 유대만으로도 가족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자신들을 기구한 운명이라 말하는 세상의 시선을 향해 주인공 주원은 당차게 맞선다. “저희 하나도 안 기구한데요. 그냥… 좀 특별한 거예요.”

드라마를 보며 내 주변의 ‘조립식 가족’을 떠올려 봤다. 가장 먼저 생각난 건 여동생. 30대인 동생은 절친과 함께 살며 즐겁게 지낸다. 혈육인 나와는 며칠만 함께 있어도 다투는데 친구와는 한 번도 싸우지 않아 늘 신기하다.

얼마 전에는 아픈 동생 곁에 그 친구가 있어 든든하고 고마웠다. 가족들은 이제 동생의 것을 챙기며 자연스레 친구 몫도 함께 챙기고,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친구의 생일엔 미역국을 끓여 함께 식사하며 축하한다. 그렇게 우리도 또 하나의 ‘조립식 가족’을 만들어가고 있다.

주변의 사모들이 만들어가는 ‘조립식 가족’은 더욱 각별하다. 한 선배 사모는 교회 공동체에서 어린 미혼모 자매와 그 아이를 돌봐왔다. 어느 날 자매가 아이만 남긴 채 떠나자 망설임 없이 갓난아이를 품에 안았다.

사모는 “친모에게서 상처를 받았더라도 사랑과 책임으로 품어줄 수 있다면 아이의 그 마음을 채울 수 있다”면서 친손녀보다 더 깊은 애정으로 아이를 8년째 양육하고 있다.

메신저 프로필엔 아이의 성장 기록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가족 그림을 처음 그린 날, 생일, 입학식까지. 가끔 안부를 묻는 친엄마를 위해 사모는 그 소중한 순간들을 프로필을 통해 말 없는 편지처럼 전한다.

얼마 전 만난 또 다른 사모는 문제아로 낙인찍힌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소년법 처분을 받은 아이들이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24시간 곁을 지키며 끼니마다 따뜻한 밥을 챙겨준다.

이 사역은 한 끼 밥에서 시작됐다. 청소년센터에서 만난 한 아이가 던진 “선생님, 엄마가 해주는 밥은 어떤 거예요”라는 질문 속에는 단순한 밥이 아닌 그 너머의 엄마 사랑에 대한 깊은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고 했다. 그 마음에 응답하듯 사모는 아이들을 품고 따뜻한 밥을 지어주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사모는 아이들에게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밥상 예절부터 가르친다. 어른이 먼저 숟가락을 들어야 식사를 시작하고, 밥을 먹으며 하루 동안 감사했던 일을 함께 나누며 가족이 돼 간다.

가끔은 뾰족한 말로 상처 주는 아이도 있지만 혼나고 배우며 조금씩 자라난다. 그러다 “혼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우리 엄마가 돼주시면 안 돼요”라는 말들이 이 가족을 지켜가는 힘이 된다고 했다.

드라마를 넘어 현실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조립식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모들의 삶은 깊은 울림을 준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길을 걷는 그들에게 “정말 대단하세요”라고 하면, 사모들은 마치 드라마 속 대사처럼 말한다.

“대단하긴. 우린 하나님 맺어 주신 특별한 가족인걸.”

상처받고 버려진 이들을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기꺼이 품는 사모들의 모습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닮았다. 아이들을 위해 눈물로 밥을 짓고 기도로 밤을 지새우며 친자녀보다 더 깊은 사랑으로 돌보는 그들의 헌신은 가족의 본질이 혈연이 아닌 사랑과 책임임을 보여준다.

사모들이 만들어가는 ‘조립식 가족’은 단순한 공동체를 넘어 하나님의 품처럼 따뜻한 울타리가 된다. 그 안에서 상처받은 이들은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가족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 땅의 또 다른 ‘조립식 가족’에게도 그 울타리가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숨결이자 다시 걸어갈 수 있는 작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한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