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넷플릭스 드라마 ‘조립식 가족’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지난해 연말 화제가 됐던 작품인데 최근 들어 뒤늦게 ‘입덕’했다. ‘조립식 가족’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통해 대안적 가족의 형태를 보여주는 휴먼 드라마다.
저마다 상처를 안고 있는 드라마 속 인물들은 한 식탁에 둘러앉아 따뜻한 밥을 나누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면서 정서적 유대만으로도 가족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자신들을 기구한 운명이라 말하는 세상의 시선을 향해 주인공 주원은 당차게 맞선다. “저희 하나도 안 기구한데요. 그냥… 좀 특별한 거예요.”
드라마를 보며 내 주변의 ‘조립식 가족’을 떠올려 봤다. 가장 먼저 생각난 건 여동생. 30대인 동생은 절친과 함께 살며 즐겁게 지낸다. 혈육인 나와는 며칠만 함께 있어도 다투는데 친구와는 한 번도 싸우지 않아 늘 신기하다.
얼마 전에는 아픈 동생 곁에 그 친구가 있어 든든하고 고마웠다. 가족들은 이제 동생의 것을 챙기며 자연스레 친구 몫도 함께 챙기고,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친구의 생일엔 미역국을 끓여 함께 식사하며 축하한다. 그렇게 우리도 또 하나의 ‘조립식 가족’을 만들어가고 있다.
주변의 사모들이 만들어가는 ‘조립식 가족’은 더욱 각별하다. 한 선배 사모는 교회 공동체에서 어린 미혼모 자매와 그 아이를 돌봐왔다. 어느 날 자매가 아이만 남긴 채 떠나자 망설임 없이 갓난아이를 품에 안았다.
사모는 “친모에게서 상처를 받았더라도 사랑과 책임으로 품어줄 수 있다면 아이의 그 마음을 채울 수 있다”면서 친손녀보다 더 깊은 애정으로 아이를 8년째 양육하고 있다.
메신저 프로필엔 아이의 성장 기록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가족 그림을 처음 그린 날, 생일, 입학식까지. 가끔 안부를 묻는 친엄마를 위해 사모는 그 소중한 순간들을 프로필을 통해 말 없는 편지처럼 전한다.
얼마 전 만난 또 다른 사모는 문제아로 낙인찍힌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소년법 처분을 받은 아이들이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24시간 곁을 지키며 끼니마다 따뜻한 밥을 챙겨준다.
이 사역은 한 끼 밥에서 시작됐다. 청소년센터에서 만난 한 아이가 던진 “선생님, 엄마가 해주는 밥은 어떤 거예요”라는 질문 속에는 단순한 밥이 아닌 그 너머의 엄마 사랑에 대한 깊은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고 했다. 그 마음에 응답하듯 사모는 아이들을 품고 따뜻한 밥을 지어주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사모는 아이들에게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밥상 예절부터 가르친다. 어른이 먼저 숟가락을 들어야 식사를 시작하고, 밥을 먹으며 하루 동안 감사했던 일을 함께 나누며 가족이 돼 간다.
가끔은 뾰족한 말로 상처 주는 아이도 있지만 혼나고 배우며 조금씩 자라난다. 그러다 “혼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우리 엄마가 돼주시면 안 돼요”라는 말들이 이 가족을 지켜가는 힘이 된다고 했다.
드라마를 넘어 현실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조립식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모들의 삶은 깊은 울림을 준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길을 걷는 그들에게 “정말 대단하세요”라고 하면, 사모들은 마치 드라마 속 대사처럼 말한다.
“대단하긴. 우린 하나님 맺어 주신 특별한 가족인걸.”
상처받고 버려진 이들을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기꺼이 품는 사모들의 모습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닮았다. 아이들을 위해 눈물로 밥을 짓고 기도로 밤을 지새우며 친자녀보다 더 깊은 사랑으로 돌보는 그들의 헌신은 가족의 본질이 혈연이 아닌 사랑과 책임임을 보여준다.
사모들이 만들어가는 ‘조립식 가족’은 단순한 공동체를 넘어 하나님의 품처럼 따뜻한 울타리가 된다. 그 안에서 상처받은 이들은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가족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 땅의 또 다른 ‘조립식 가족’에게도 그 울타리가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숨결이자 다시 걸어갈 수 있는 작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한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